-아이들 싸움-
미니 국제전쟁
아이들 귀국 이삿짐을 싸다가 애들 공책을 펴보곤 우리 부부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큰애는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애는 유치원생이었다, 건너가기 전에 미리 영어를 가르치거나 새로이 맞게 될 문화에 대해서 어떠한 교육도 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갔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라고 써놓은 꼴이, 이건 글이 아니라 숫제 그림을 그려 놓은 것이었다. S, J 같은 것은 좌우가 바뀌게 그려놓았다. 아마 무슨 숙제 마감일인 것 같은데 큰애가 공책에 받아적어 놓기를 “썰쓰데이”라고 한글로 써 놓은 것도 보았다 부모를 잘 만난 것인지 잘못 만난 것인지, 어느 날 비행기 몇 번 타더니 자기들을 떨궈 놓은 곳이라곤, 이건 말도 쏠랑쏠랑거리고, 아이들 색깔도 까맣고 하얗고, 냄새도 노리끼리 하니 다르고, 하여튼 학교라는 곳의 분위기가 전혀 이상한 곳이었다.
새삼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엄청난 문화적, 정신적 충격 속에 대책 없이 아이들을 내팽겨쳐둔 셈이었다. 애비나 애미도 이국생활 적응에 혼을 빼고 있었으니 자기들 혼자서 적응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사실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프다는 불평을 자주 들었다. 이유는 같은 반 애들이 괴롭힌다는 것이다.
까맣고 하얗고 간에 아이들이야 마찬가지라, 어느 날 피부색이 자기들과는 다르고, 말도 못 알아듣고 하지도 못하는 애가 오니 그저 찝쩍대 보는 것이다. 팔꿈치로 밀쳐 보는 등 이리저리 놀려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애도 별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이 엉뚱하게 괴롭히길래 따지긴 따져야겠는데 말은 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애들은 더욱 놀려대고, 또 선생님께 이르자니 영어 또한 여의치 않고, 아무리 애들 속이라지만 얼마나 갑갑했을까!
처음에는 그래도 사이좋게 놀아라고 타이르기도 하고, 학교로 방문해서 담임선생님한테 이러저러한 사정 이야기도 하면서 특히 잘 챙겨 보아주십사 부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나 선생님도 하루 종일 감시, 감독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 결국 그런 문제는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다.
그럭저럭 조용하다 싶으면 또 다시 학교가기 싫다고 할 때면 신경질이 버럭 나 “그러면 그놈들 코피를 내버려!”라고 했더니 옆에서 집사람이 펄쩍뛴다.
"No physical contact! ”아이들간 폭력은 경찰소관 사항이란다.
“그러면 까부는 x들 멱살을 잡아 흔들어 버려!”라고도 했지만, 여하튼 결국 일정 세월 적응할 동안은 그런 고초를 겪어야했던 것이다.
애들은 금세 영어를 익히니 한 석달만 고생하면 될 거라고 듣고 갔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기들끼리 부닥치면 싸우고 따질 수 있을 정도로 되기까지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 약 1년이 걸렸던 것 같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여러 민족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다 보니 아이들 싸움이 어른들간 국제 싸움(?)으로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우선 기억나는 것만도 쿠웨이트 아버지, 인도네시아 엄마, 아이슬란드 아버지, 코스타리카 엄마 등등이었다.
다짜고짜 와서는 자기 아이들이 우리 애한테서 어떤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항의하면, 우선 아이한테서 상황 파악을 해야하고 그에 따라 사과하든지, 반론을 하든지 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친 표현도 쓸 줄 알아야 한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오해도 많아 예컨대 어른이 꾸중을 하는데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반항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나라도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어른이 꾸중할 때 아이가 어른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반항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었다.
나도 가서 따진 적도 있지만, 좌우간 이런 과정이 서로 간에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나쁜 이미지로 연결된다.
우리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는 사과도 해야 하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교육도 해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매질도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무리 교육 목적이라도,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라도 매질은 위법이다. 아동학대죄다.
그러다 보니 더운 여름이라도 온통 문을 닫고는 혼을 내야 하는데, 자식한테 매질해서 속상하는데다. 이 무슨 이국땅에서 애꿎은 고생인가 싶어 더욱 속이 상한다. 이민세대의 애환이 그런 것 이었을 게다.
여러 민족, 여러 국가 간의 일은 모두 자기들만 잘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드높은 민족자존심만 앞세운다면 역설적으로 미개민족과 비슷해진다.
애들 싸움에 무슨 국제적인 규범이 있겠는가 만은 사안에 따라 국제적인 규범이 무엇인지 알면 알수록,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할수록 한국의 신인도는 올라가는 게 국제화요 세계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