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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12.14. (일)

내국세

(94)'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선다'

허명환 著(前행정자치부 서기관)

-흑인 여대생 피부의 교훈-
피부색 밑의 피는 모두 빨간색

 

내가 처음으로 흑인 여대생의 맨살갗을 찬찬히 훔쳐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가서 얼마 안되어 시라큐스(Syracuse)시장 연설회에 초대받아 갔을 때였다.

 

마침 흑인 여대생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팔소매가 없는 옷을 입고 있어 연설 도중 자연스러이 그녀의 맨살피부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슬쩍 그녀의 살갗을 보노라니 순간 욱! 하고 구토가 날 것 같았다. 노린내 등 악취로 인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녀의 피부색 때문이었다.

 

피부가 그저 까만 단일색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멜라토닌 색소인지 뭔지 등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영 비위와 맞지 않았던 것이다.

 

즉시 눈길을 돌려 시장이 연설하는 것을 보며 구토기를 삭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평소 비위가 그리 약한 편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슬그머니 눈길을 돌려 그녀의 피부를 다시 홈쳐 보았는데, 역시 구토기가 동해 눈길을 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설회장을 나가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구토기를 진정시키며 연설을 듣는 내내 왜 그럴까를 고민 하였는데, 그 고민 중에는 만약 이 아가씨가 황인인 나의 피부색을 보고도 그러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 있었다. 내 손 피부색을 그녀 시각에서 볼려고 노력도 해 보았다.

 

그저 같은 문화, 같은 민족끼리만 살아오다 보니 흑인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고,또 막연히 흑인이라 하면 그저 뭔가 무식하고 불결하고 거북한 상대로 여겨 왔던 선입견의 결과라 할 것이다.

 

그 뒤로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흑인 남녀학생들과 접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인물도 잘 생겼고, 매너도 깔끔한 이도 많았으며, 친하게 지낸 이도 많았다. 물론 구토기란 사라졌었고......

 

맥스웰대학원에 석박사 과정을 다닐 정도의 흑인이라면 미국에서는 지식수준이나 소득수준이 웬만큼은 넘는 부류이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편 금발의 백인 여대생 피부를 가까이서 보노라면 노릿노릿한 잔털이 뽀송뽀송 피부를 뒤덮고 있으며, 피부에 윤기가 없는 것이 거칠기가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야 최근에 와서야 자외선 지수를 발표한다고 하지만, 백인들은 자외선에 민감하여 약간만 심하게 노출되어도 얼굴이 뻘겋게 익고 살갗이 벗겨져 병원을 들락날락 해야 하는 등 큰 애를 먹는다.

 

파란 눈동자도 햇빛에 약하기는 마찬가지라 약간만 햇살이 강해도 남녀 할 것 없이 한겨울에도 까만 선글라스를 끼어야 히는터라, 이래저래 보면 인체 조건은 황인들이 제일 나은 것 같았다

 

요컨대, 피부색은 개개인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비록 피부색은 달라도 그 체온은 36.5도로 모두 따뜻하며, 그 아래를 오가는 피는 모두 같이 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황인이든, 말레이인이든, 아랍인이든 개인이 어떤 피부색을 갖느냐에 의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가 된다. 피부색은 우연히 내게 주어진 것이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인종을 꿰뚫어 개인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그 사람의 행동거지가 얼마나 예의바른가에 의한다. 식사나 대화 등 다양한 일상사에 걸쳐 항상 타인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이미 피부색과는 상관없다는 말이다.

 

이 기준은 상대방이 불구냐 아니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상대방이 시력이 상실되었다든지, 소리를 듣지 못한다든지, 사지가 부자유스럽다든지 하는 그런 신체상의 장애만을 이유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사람따라 인종편견, 성편견, 불구자에 대한 편견 등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용인된 국제규범은 그런것과는 무관하게 개개인을 그 자체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니”, “급 공무원 주제에 월 안다고?”, “잔말 말고 따라 하기만 하면 돼 ! ”,“여자가?”등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문화는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항상 연결되어있고, 인간관계의 시발은 나이든, 직급이든 수직윤리에 맞추고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 하며 이런 패턴을 줄기차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 혹은 국제규범에 맞추어 그 패턴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지,아니면 국내 따로 국제 따로의 이중패턴을 유지할 것 인지, 작금의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이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IMF극복이라는 걸 단순히 과거 성장시절에 묻어 있었던 거품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잉여 인원을 정리하고 부실기업만 정리하면 IMF관리체제는 땡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표피에 나타난 결과로서의 현상일 뿐, 보다 근본원인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위의 세 가지 선택 안 중 하나를 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Korea는 동방의 고요한 은둔의 나라가 더 이상 아니다. 빗장 걸고 호두껍질 속에서 우리끼리만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살 수 있는 때는 지났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국제규범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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