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년 4월 나는 드디어 광주에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로 이사했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합류하고 나니 심신이 안정되었다. 퇴근 후 틈나는 대로 앞으로 국제조세 업무에 대비하고자 무역사 시험준비를 하였는데 다행히 합격하였다. 당시 세무서장은 최선길(崔仙吉)서장(후에 서울시내 구청장 역임)이었는데 그는 너무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우리를 늘 조마조마하게 했다. 특히 등산을 좋아했는데 79년 9월말 세무서 전 직원이 버스를 빌려 타고 설악산 1박2일 등정을 하였다. 서장은 내가 대청봉을 오를 수 있을까 염려했으나 나는 선착했고 중청, 소청을 거쳐 양폭까지 무려 12시간이나 산행한 기억이 새롭다.
궁즉변,변즉통(窮則변, 변則通)
79년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었다. 너무 큰 충격 속에서 무엇보다 나라의 안보가 먼저 걱정되었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고 보안사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보안사 준위가 세무서까지 출입하며 위세를 부렸다. 그 해 12·12사태로 일단의 정치 군인들(신군부)이 총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나라 전체가 심히 혼란스러웠고 공직자들은 불안에 싸여 좌불안석이었다.
나는 이 불안한 시기에 내 공직의 앞길에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궁리하던 끝에 총무처 교육훈련과를 찾아갔다. 김범일 과장(행시 12회, 후에 대구시장 역임)을 만나 의논한 결과 단기(6개월) 유학 케이스가 있으니 지원하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서슴치 않고 지원하였다.
80년5월18일, 소위 5·18사태로 전국이 뒤숭숭하고 세무관서에도 신군부에 의해 거센 숙청의 바람이 불어닥칠 때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유학의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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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사태이후 당시 정치·경제·사회는 ‘군부독재’가 지배했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학생시위가 도심 곳곳에서 끊이질 않았다. 80년 초 시위대는 파출소는 물론 관공서에 화염병을 던지거나 진입을 시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에 서울 등 주요 도시 시내 세무서들도 1층 창문에는 방호철방을 설치했다. 당시 광주세무서가 화염병에 의해 불타기도 했다. 모 세무서 민원실 유리창에 설치된 방호철망이 이채롭다. <세정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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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희망의 빛이 보이다.
1. 미국유학
79년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권력공백 상태에서 12·12사태와 5·18 광주민주항쟁으로 역사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던 바로 그 해(80년) 6월초 나는 미국 L.A에 있는 남가주대학(USC) 행정대학원 부설 조세행정연구소(I.T.A.:Institute for Tax Administration)로 단기 유학을 떠났다. 본청 부가가치세과 김종상(金鐘相) 사무관(후에 부산청장 역임)도 나와 짝꿍으로 함께 떠났다. 우리는 먼저 뉴욕에 내려 이곳저곳을 구경한 후 L.A에 안착하였고 얼마 후 윌셔에 있는 사우드하바드 대로변에 원룸을 얻어 숙소를 정하였다.
식사당번 정하여 자취생활하다
1층 방문을 열면 바로 앞에 언제든지 수영할 수 있는 옥외 풀장이 있었고 주변은 주택가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교대로 식사당번을 하며 자취생활을 하였다. 활달하고 쾌활한 김 사무관과 나는 서로 많은 힘이 되었지만, 김 사무관을 좀 더 배려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못내 후회로 남는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 L.A도심 스프링스트리트에 있는 연구소에서 미국의 국세행정에 대하여 강의와 토론과 과제학습으로 교육을 받았다.
11개국 국세청 간부로 이루어진 유학 동기생들
연구소장은 J.B.Ham으로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ABC:American Born Chinese)으로 동양계 학생들과 친했고 특별히 우리에겐 더 잘 대해주었다.
학생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온 개발도상국 출신들이었다. 한국(1), 대만(5), 태국(1), 스리랑카(여1), 파키스탄(2), 이집트(1), 나이지리아(4), 시에라리온(여1), 짐바브웨(1), 멕시코(1), 자메이카(2) 인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모두 그 나라의 현직 국세청 중진 간부들이었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은 거의 다 영국 유학을 마친 터라 영어는 우리보다 수준이 한단계 높았다.
강사들은 전·현직 미 국세청(I.R.S) 고위간부 출신들로 구성되었다. 수업시간엔 학교에서 은밀한 가운데 어느 학생이 질문을 많이 하는가를 체크해 두었다가 이를 학생평가에 활용했다.
권총 휴대하고 강의하는 미국 세무공무원
어느 날 탈세범에 대한 특별조사(Criminal Investigation) 강의 시간이었는데 L.A세무서 현직 특별조사관이 나왔다. 미국 역사에서 희대의 마피아 출신 탈세범 알카포네를 잡아 사법처리한 기관이 바로 미 국세청 C.I.D이었는데, 나는 강사에게 지금도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상의 안쪽에서 권총을 꺼내보였다. 미 국세청 C.I.D 요원은 미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므로 미 대통령이 그 지역에 올 때는 경호팀에 합류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각 국에서 온 학생들과 커피브레이크 시간에 스스럼없이 즐겁게 이야기하며 지냈다.
-매주 月·木 연재-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