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휴대품 면세한도 상향조정을 연내 끝마치기로 하는 등 18년만에 면세한도 인상 검토에 착수했으나, 이같은 논의가 접근론에서 이미 방향설정을 잘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에앞서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현행 400달러로 묶인 해외여행객 면세한도를 대표적인 규제로 지목했다.
대통령 주재하의 끝장토론에서 경제단체 관계자의 규제 지목에 정부는 면세한도 상향 등을 포함한 전면적인 검토에 나설 것임을 밝히는 등 ‘면세한도=규제’라는 등식을 사실상 공인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 관계자 및 시민단체에선 이같은 공식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조세학계 사이에선 조세제도를 규제로 보는 것부터가 방향설정을 잘못 한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도 소재 한 중소기업인은 “일자리를 늘리고 성장을 늘리는 기본 틀에서 규제개혁을 얘기해야지, 해외여행 다녀온 사람들에게 더 큰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 어떻게 규제개혁인지 의문”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시민단체 관계자 또한 “종전부터 면세한도 상향에 대해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중소기업의 성장과 영세·서민층을 위한 복지혜택 등을 가로막는 규제를 혁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느닷없이 면세한도 상향 논의가 규제개혁 논의 의제로 제시되고 정부 당국자들이 진중하게 논의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질타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약 1천364만명의 내국인이 해외여행을 위해 출국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중복 출국자 등을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반면, 2010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최저수준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55만 명이며,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차상위 계층은 185만 명에 이른다. 더욱이 갈수록 양극화되는 경제구조로 인해 차상위 계층의 인구 또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장을 통한 분배와 복지를 강조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기조를 감안하면, 면세한도 상향이 곧 규제라는 경제계의 일방적인 주장에 더해 당장 검토하겠다는 몇몇 관료 들의 성급한 동참발언이야말로 정작 성장을 가로막는 잘못된 규제를 걷어내는데 주력해 할 정부 당국의 개혁동력 마저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면세라는 조세제도를 규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조세계 학자들의 지적 또한 일고 있다.
김갑순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경제규모를 감안해 면세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측면에선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이것을 규제라고 보고 접근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면세한도는 규제가 아닌 특혜로 보아야 하며, 한도를 올릴 경우 서민층만 혜택을 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소비를 전제로 지난 1979년 외국여행자 휴대품 면세제도가 도입됐으나, 현재는 세금 없이 물품을 구입하는 통로로 변질된 실정에서 면세한도를 조세규제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사회 계층간의 형평성을 저해하는 규제에 몰두해야 할 정부가 경제적 이윤을 불리고 다시금 이를 사용하는데 불편을 느낀 대기업 및 일부 계층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야 말로 진정한 규제대상이라는 지적 또한 일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해외여행자 휴대품면세기준은 지난 1979년 10만원을 시작으로, 88년 원화를 기준으로 30만원(약 400불)으로 확대됐으며, 이후 96년 미화 기준 400불로 전환된 후 16년간 변동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