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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5.10. (토)

재정패널과 소득자료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필자가 미국에서 갓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조세연구원에 입사한 것이 1992년말,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시간의 무상함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려 한다. 소득자료의 미비에 대한 이야기다.

 

경제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이 하나되면 될수록 금융정책은 그 영향력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이는 작금의 EU에서 벌어지는 유로경제권의 재정위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27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은 단일 통화권을 형성하고 있어 대부분의 유럽연합국가들의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물론 영국과 같은 예외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화폐금융론에서 이야기하는 이자율 정책이나 공개시장 조작, 재할인율과 지급준비율조정과 같은 금융정책의 여지가 사라진지 오래다. 유로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 세계가 개방체제로 수렴하고 여기에 IT환경의 발달이 힘을 보태 한 나라가 성장률, 물가수준 등 거시변수의 조정을 위해 금융정책을 활용할 수 있는 레버리지는 지극히 좁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는 더욱이 그렇다.

 

그렇다면 정부가 물가안정과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재정정책으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절벽(fiscal cliff)의 해결에 목을 매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일자리  창출, 고용 안정, 복지 확대, 소득재분배 제도 등 최근 대선정국에서 후보들이 하나같이 내걸었던 공약을 실천하는 수단 역시 재정정책으로 귀결된다. 조세정책과 지출정책으로 구성된 정부의 살림살이를 통해서 시장을 보완하며 함께 나라경제를 이끌고 나가는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재정정책의 환경은 진공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처한 여건이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이 어우러져 국민경제를 구성하게 된다. 나라살림 운영이 미치는 영향 역시 이들의 행태 변화에 의해 의도한 효과를 시현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재정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데는 정책 시뮬레이션이 강조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낮다. 여기에 사회보험을 더해 국민부담률을 비교해 봐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이 내용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하는 사안들인 것이다. 과연 명목세율이 낮은 것인지, 아니면 각종 공제 등 감면제도가 많아서인지, 그것도 한차원 더 들어가야 한다. 어떠한 감면제도는 그 존재의 이유가 타당한데 비해 다른 감면제도는 더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거나 실제로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이 부분이야말로 실증의 영역이며 당연히 실제의 자료를 갖고 분석을 해봐야 한다.

 

지출정책도 마찬가지다. 복지정책을 확대하는데 사회보험을 확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공적부조를 두텁게 해야 하는지. 그것도 보험이 적용되는 대상의 범위를 확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수혜요율을 높여야 하는지 등등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실제 자료분석을 통해 정책 실험을 실시하고 이에 근거해 제도를 도입․폐지하거나 변경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도 안타깝게 이러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소득자료가 불비하다. 소득계층을 이야기하고 남녀노소를 이야기하며 직군을 이야기하고 직종, 고용형태 등을 이야기하지만 이는 모두 추정자료에 근거한 내용이다. 각종 패널자료가 서서히 갖춰져 과거에 수행이 어려웠던 분석이 이뤄지고는 있지만 그 패널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우리는 여기서 원자료 그러니까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소득자료의 공개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 소득자료는 소득통계(statistics of income)에 의해 국민 모두에게 공개되며 이를 기초로 해서 연구자들이 정부의 조세와 지출 정책효과에 대해 세밀한 정책 시뮬레이션을 실시한다. 따라서 소기의 정책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재정패널 조사가 4차년도까지 이뤄지고 공개돼 각종 미시행태연구에 활용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이와 함께 소득원자료를 연구에 활용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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