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말처럼 애매한 말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경제가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여러 고비를 겪었고 그 때마다 위기론이 기승을 부렸다. 지나가고 나서 보면 그것이 정말 위기라고 할만한 경우도 있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조차도 주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가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글에서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지면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다. 그리고 사실 따져본다고 해도 위기를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있었던 두번의 석유파동은 전적으로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지표상으로 보면 위기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빠르게 회복됐고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준 측면도 있다. 상처도 크지 않았다고 본다. 1990년대 중반의 소위 IMF위기는 외부적 요인 뿐만 아니라 내부적 요인과 그 후의 대응과정에서의 미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피해가 증폭되기도 했지만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숙인 등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남긴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2008년에 밀어닥친 금융위기 때는 대공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정부의 발빠른 대응 등으로 큰 무리없이 넘어간 것 같다. 그런데 다시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세계경제를 흔들었고 당연히 우리 경제도 영향을 받았다. 아직 장담을 하긴 어렵지만 이 위기도 수습의 실마리가 잡혀가고 있는 것 같다.
요컨대 흔히 말하는 것처럼 과거의 위기는 결국 기회였고 위기를 통해서 우리 경제의 체질은 더 강화돼 선진국들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한 위치까지 우리 경제가 올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새삼스럽게 위기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초를 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앞에서 말한 위기라는 것들은 대체로 단기적 혹은 순환적 충격요인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하는 위기는 잘못하면 추세가 꺾이는 성격의 것일 수 있다는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선진국 문턱까지 갔다가 진입에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걱정이 드는 것은 최근에 점점 더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쏠림현상 때문이다. 균형을 잃을 때 전복되는 것은 배 뿐만 아니다. 경제 혹은 국가도 뒤집힐 수 있다. 위로와 치유에 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치유를 위한 수술이나 항암치료 같은 괴로운 과정과 그 위험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과를 나누자는 이야기에는 모두가 열을 올리지만 누가 생산의 수고를 담당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잘 나가는 대기업이나 대기업의 CEO들을 양극화의 주범인 것처럼 비난하는 목소리만 크게 들린다. 성장을 이야기하려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 것처럼 취급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1960년대나 1970년대의 고도성장기에는 소득분배가 추세적으로 그리고 뚜렷하게 개선되는 성과도 함께 나타났다. 빠른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일자리 확대가 없었더라면 분배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고 환경 개선도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화도 경제성장의 토양 위에서 싹트고 자랐다.
쏠린다는 것은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우리 경제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르게 진단해 균형잡히고 실현 가능한 처방을 해야 한다. 특히 중장기적 시각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훨씬 더 많은 비중의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더 큰 문제들은 당장의 일자리나 경기 활성화의 문제보다 수십년에 걸쳐서 나타날 인구 구조의 변화 같은 중장기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권에 도전하는 유력후보들이 예외없이 쏠림을 쫓아다니거나 그것을 부추기는데 몰두하고 있다는 것에서 위기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위기요인은 내생적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과거의 위기들이 대부분 외생적인 요인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내부적 요인, 특히 올바른 리더십의 부재에 의한 위기는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이라도 모두가 정신을 가다듬고 과연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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