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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2. (수)

가난한 집 맏아들론과 경제민주화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의 화두는 '복지 논쟁'을 넘어서 '경제 민주화'로 접어들고 있다. 4·11총선을 거치고 이제 12월19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여야를 불문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력 집중의 폐해가 강조되고 재벌총수 일가의 부당경쟁 및 골목 상권까지 장악하는 문제에 대해 성토하는 분위가가 팽배한 실정이다. 그 실체를 놓고 여당에서는 원내대표와 대통령후보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장간의 날선 공방이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를 무너뜨리고 5·16 군사정부가 들어설 때까지의 기간, 그리고는 김영삼·김대중 정부 등 5·18항쟁을 통해 살아난 민주화의 전통이 이제 막 성숙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 민주화와 비교되는 경제 민주화 그 실체는 무엇일까.

 

경제하면 지금까지는 정부 규제를 넘어서 자유화를 통한 경쟁의 촉진이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제주체로 하여금 혁신하고자 하는 유인기제를 통해 부의 창출이라는 성과를 시현할 수 있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후발개도국의 경우 정부 주도의 개발년대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이룬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급격한 따라잡기에 성공, 발전경제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있는 바, 경제는 민주화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이 강조되곤 했다.

 

그런데 이렇게 경쟁을 강조하고 인센티브에 따른 효율을 강조하다 보니 결국 유인이 지나쳐 탐욕으로 흐르고 부의 집중이 지나쳐 분배의 문제가 심각해져 정책의 우선순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하게 양극화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면서 정의(justice)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게 됐다. 마이클 샌델도 우리의 과도한 관심에 놀라지 않았던가?

 

경제 자유화의 선봉에 서고 있는 홍대 김종석 교수와 함께  대척점에서 토론한 숙대 유진수 교수가 '가난한 집 맏아들론'을 들고 나와 경제민주화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골에 평범한 한 가정에서 논팔고 소팔아 똑똑한 맏아들을 의대에 보내느라 온 가정이 희생을 했다. 부잣집 며느리를 얻어 병원을 개업하고 부지런히 돈을 버는 맏아들에게 있어 희생한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은 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유 교수는 도덕적 책임론을 강조한다. 법적 책임은 아니지만 최소한 도덕적 책임은 져야 한다며 우리의 재벌들도 같은 논리로 우리 경제에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론적으로 경제학에서 분배는 주어진 것으로 보고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가정은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정부의 역할과 범위를 논의하면서 세금과 분배정책을 통해 당연히 이와 같은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은 가장 기본적인 정부의 몫이지만, 우리 경제의 골간을 형성하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재벌들도 정당한 세금과 함께 선량한 맏아들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강조하고 가장 남을 의식하며 사회적인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가 자본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공동체 자유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자유주의에 입각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운용하고 발전시키지만 그 근간에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따뜻한 배려가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도덕적 책임이라고 해도 좋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 해도 좋다. 경쟁과 함께 배려가 같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이며, 특히 국민적 희생에 기초해서 발전한 우리 재벌기업들의 솔선수범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라는 사회적 압력과 같이 강제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최부자집 가훈같은 성격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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