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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1. (화)

죄악세와 국민건강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몇해전 필자는 술·담배에 대한 세금인상 문제를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하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음주·흡연이 죄(罪)냐'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원성만 산 일이 있다. 이는 모두 '죄악세'라는 용어에서 비롯됐다.

 

죄악세란 본래 정통 경제학의 한 분야인 재정학, 그 중에서도 조세론에서 널리 사용되는 전문용어이다. 논란이 됐던 '범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죄'라고 하면 영어로는 범죄를 이해하는 'crime'과 종교적 차원에서의 원죄나 양심의 짐, 등을 의미하는 'sin'이라는 두가지 단어가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말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죄'라는 단어로 통일해 사용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죄악세'란 'sin tax'이다. 범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후자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범죄를 나타내는 의미로 오해되면서 마치 '음주자, 흡연자 들은 모두 전과자나 죄인들이냐'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죄악세'란 학문적으로 널리 쓰일 뿐만 아니라 전문학술지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전문용어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 억제'를 위해 과세하는 세금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죄악세'라는 용어가 나오더라도 '소비자^죄인'이라는 등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죄악세로 지칭되는 대표적인 세목은 주류 및 담배 관련세이다. 이들 두가지 소비품목은 공통점이 많다. 소비자들에게 쾌락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건강이 유해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음주운전 사고나 간접흡연 폐해 등과 같이 그 폐해가 직접소비자가 아닌 제3자에게도 미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킨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울러 중독성으로 인해 소비를 줄이거나 끊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도 많이 닮았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 본 분들이 거의 대부분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선진국에서는 술·담배의 가격이 매우 높지만,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서는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술·담배를 불법화한 국가들을 제외하면, 독재국가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술·담배의 가격이 매우 낮은 것이 특징적이다.

 

이는 무엇을 시사해 주나? 선진국·복지국가일수록 국민건강 증진 차원에서 술·담배의 소비를 억제하는 데 온 힘을 쏟는 데 반해, 후진국일수록 그런 개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독재국가일수록 국민적 스트레스를 저렴한 술·담배를 통해 해소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도 있다. 정부가 국민들 특히 서민들을 위해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생필품을 싸고 안정적으로 국민들에게 공급해 주는 것이다. 결코 술·담배를 싸고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음주폭력 문제가 커다란 사회 현안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음주에 대해 매우 관대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으나, 앞으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한다. 흡연도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은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버스정류장 등 일반 대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공장소까지 빠르게 금연구역이 확산되고 있다.

 

이상의 두 가지 모두 음주와 흡연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외부비용을 감축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규제만으로 충분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규제만으로는 소비 억제가 어렵고, 소비가 충분히 억제되지 않으면 음주폭력·음주교통 사고나 간접흡연의 폐해를 가시적으로 감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사회적 문제 뿐만 아니다. 소비자들 자신들이 입게 되는 육체적·정신적 손상 및 고통도 음주·흡연을 감축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이다. 음주·흡연자들의 건강유해성 문제는 비단 자신들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국민 의료비 증가, 건강재정 악화 및 국가 재정건정성 저해라는 거시경제적 차원에서의 문제가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중증장애·조기사망 등에 이를 경우 가족·친지들에게도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힌다. 따라서 음주·흡연은 단순히 음주·흡연을 위해 직접 지불한 술값·담배값만으로는 산정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야기한다.

 

굳이 적정 조세론을 빌리지 않아도 위와 같이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야기하는 술·담배는 소비를 감축할수록 비용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으며 국민건강 증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선진국·복지국가에서는 예외없이 모두 술·담배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개인의 쾌락을 위해 본의 아니게 사회·경제적 외부비용을 많이 유발하는 만큼 조세로서 외부비용을 환수하고 있다.

 

그럼 왜 고세율을 적용하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 억제를 위해서는 술·담배의 가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아야 한다. 부담스러운 가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세금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 소비 억제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죄악세'의 세율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아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청소년들조차 술·담배를 별 부담없이 즐기고(?) 있다. '죄악세'와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당장의 호주머니 사정만 따지지 말고, 더 큰 부담을 지기 전에 술·담배에 대한 소비세율, 제대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개편이 요구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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