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입장에서 보면 2012년4월11일 국회의원 선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그토록 많은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속돼 왔던 MB정부의 감세정책은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에서조차 묵살됐고, 오히려 그동안 야권에서 도입을 주장해 왔던 주식양도차익 과세,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 하향조정,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증권거래세 과세, 소득세 최고세율 신설, 법인세 중간구간 신설 등을 통해서 매년 5조원씩 5년 동안 25조원 이상 증세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증세와 불필요한 세출예산을 줄여서 만든 재원으로 선별적 복지정책을 수행하고자 한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선거전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야당을 누르고 입법부를 장악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눈길이 가는 점은 재정원칙을 '나라 빚을 내지 않고 복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현 MB 정부의 무분별한 감세정책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이곳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즉, 국가재정원칙은 모름지기 균형예산이어야 하며, 복지도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해야 하고, 예산의 뒷받침이 없는 추가적인 복지재정지출을 하고자 한다면 증세를 해야 하며, 일시적인 감세는 가능하지만 그 원인이 치유됐다면 감세를 철회해야 하며, 남북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재정 건전성은 다른 선진국보다 더 건실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었던 것이다.
반면 MB정부는 집권초 금융위기가 극복됐음에도 불구하고 부자감세정책을 통해서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악화시켰다. 이 결과 국고가 비게 되자 세계 제1등인 인천공항 주식의 매각을 통해 인천공항 신설비용을 조달하려고 했고, 친서민정책을 수행한다고 하면서 천문학적인 국채 발행은 물론 통일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통일세의 신설을 제안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펴 왔었다. 감세정책이 없었더라면 이와 같은 제안들은 다 불필요했던 것이다. 감세를 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정부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4대강 사업, 해외자원 개발 등에 수십조원이 넘는 돈을 지출했으니, 재정에 대한 비전 부재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부자에 대한 감세가 과연 소비의 진작으로 이어져서 결과적으로 감세한 것보다 세수의 증가가 있었는지 한번 검토해 볼 일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감세효과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앨런 그린스펀이나 버핏 같은 부자들 중 상당수가 감세정책에 비판적인 것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아니 외국의 사례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이번 선거전 내내 집권 여당에서조차 MB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음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만한 사람을 알 것이다. 그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면, 선거 내내 홍보를 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와 같은 공약의 실천은 매우 어려운 난제가 될 수 있다. 집권 여당의 지지계층인 상류층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하지만 국가재정 건전성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그 분의 말을 믿고 싶다. 여권의 유력한 대권 후보자인 그분은 원칙과 신뢰를 중시한다고 한다. 지켜볼 일이다. 아직 선거가 한번 더 남아 있다. 12월달의 대통령선거이다. 사실 이번 선거를 보면 여권에서 '땅 뺏기'싸움에서는 이겼는지는 몰라도 대통령 선거의 당선기준인 '쪽수'싸움에서는 졌다. 따라서 12월달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류층과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표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증세정책은 이들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이들에 대한 증세정책에 대한 도전을 어떻게 물리칠지 궁금하다.
반면 야권의 세금정책은 여권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실망스러운 점이 많이 있다. 여권보다 더 많은 복지 정책을 편다고 해놓고 증세부분은 그냥 적당한 수준에서 언급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증세 추진 정당이라는 인식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복지를 어떻게 하겠다는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일반 재정지출을 줄이겠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집권을 해봐서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설사 줄인다고 해도 정부 지출에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제적 인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복지를 안 한다면 몰라도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한다면 결국 해답은 증세인 것이다. 말을 빙빙 돌릴 필요가 없다.
어찌됐든, 이번 총선에서는 여권이든 야권이든 현 MB정부의 감세정책과는 반대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증세로 방향이 전환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판단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복지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양당 모두 공감하고 있는 이상, 증세를 하되, 그 복지 방법 즉 선택적 복지인가 아니면 보편적 복지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심사숙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증세와 사회복지의 수준을 연계시키는 보다 상세하고 치밀한 정책 마련을 기대한다. 행여 선거철에 한 말이라고 하여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결정적인 선거는 한번 더 남아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그간 약속을 지키는지 지켜볼 일이다. 증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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