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디어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Lone Star)가 한국을 9년만에 떠나는 모양이다. 2003년 한국에 올 때 2조원 남짓한 돈을 들고 와서 이제는 여기에 4조5천억원을 보태서 간다고 한다. 혹자는 9년 동안 이익률이 230% 정도면 별것 아니라고도 하지만, 정부가 조금만 정신을 차렸어도 지불하지 않을 비용이라는 점에서 볼 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백주 대낮에 텍사스 '촌뜨기들'한테 돈 퍼주고 뺨을 맞은 기분이 드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정부가 론스타를 필요 이상으로 감싸고 돈다는 느낌이 많았다는 점이다. 내국자본 같았으면 진즉 계약의 무효나 취소가 됐을 일이 몇번 있었는데도, 정부가 나서서 계약을 유지시키고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보너스까지 챙겨주면서 '그동안 섭섭했던 것 다 잊어버리고 잘 가시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2. 예를 들면 외환카드의 BIS 비율을 조작해서 싼 값으로 주식을 매입한 것은 분명 사기에 의한 것으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주식 매입은 무효나 취소사유가 되는 것이다. 하여 정부는 계약을 해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국제적 신용도 하락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대법원에서 이와 같은 사기행각이 범죄로 확정되고 난 뒤에서야 대주주의 자격을 박탈한 것으로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는 론스타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을 무렵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팔고 한국을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원래 투기자본은 그 속성상 장기간으로 투자 주식을 보유하지는 않는다. 이곳저곳 들쑤시면서 투기를 하고 싶은데 한국에 돈이 묶여 있어서 심드렁한 차에, 한국에서 팔고 떠나라고 하니 얼마나 시원했을까.
3. 산업자본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도 그러하다. 어차피 다 팔고 나가는 판에 이 문제가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정부의 태도이다. 금융위원회조차도 '은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산업자본에 해당되지만 법의 취지로 보면 산업자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른 바 법을 해석할 때 글자대로 하면(문언적 해석) 산업자본인데, 법을 제정할 목적에 비춰 보면(목적적 해석)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정부가 이토록 외국자본에 관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의 주식매각명령 판결문은 문언적으로 해석해 매각명령을 내렸다. 당시 쟁점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어디서' 매각하느냐에 따라 매각대금에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 유가증권 시장에서 주당 8천원 정도인 반면 하나은행과 사전에 체결된 주식양도계약서에는 13,500원이었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라는 것은 징벌의 의미가 강한 데도 불구하고 이번엔 정부는 목적론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문언적으로 해석해, 그냥 매각하라고만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대법원의 판결문에 '유가증권시장에서'라는 부사가 없어서란다. 그 결과 결국 론스타는 하나은행으로부터 경영권 프리미엄조로 몇조원을 더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가 론스타에게 무슨 '약점'이 잡히지 않고서야 투기자본에 대해 이토록 친절할 수 있겠는가.
4. 그러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야 늘 있는 사항이고 원래 그 바닥은 속성상 그러하니 별론으로 하자. 세법상 남은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사모펀드 가입자 중에서 한국거주자가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세간의 의문은 한국의 실력자들이 론스타 펀드에 가입을 하지 않고서야 그토록 한국정부가 친절하게 대하지는 아니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많다. 하여, 매각대금이 송금될 무렵, 과세관청이 조세조약상 정보교환규정을 이용해 론스타 펀드의 가입자 중 한국거주자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그 소득을 제대로 한국에서 신고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론스타에 부과된 법정 공방이나 판결문을 보면, 론스타 측의 변호인이나 회계사 등이 한국에서 론스타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알 수 있다. 하여 이들의 행위가 납세자로 하여금 거짓으로 신고하게 했는지를 조사(조세범처벌법 제9조)하고 법에 위배됐다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가 론스타에게 약점이 잡혀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해소될 것 아닌가.
5. 정부도 할 말이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에 읽어뒀던 '이완용 평전(김윤희 지음)'을 보면, 이완용은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따라서 조선이 힘이 없으므로, 일단 강대국인 일본에 넘겼다가 나중 강해지면 찾으면 된다는 논리로 한일합방을 추진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현실에 분노하기 보다는 현실을 조망하려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인물이 하필 그 무렵에 그 중차대한 자리에 있었던 것은 조선의 운명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로 해석하기 어렵다.
바둑을 두고 나면 복기를 한다. 이를 통해 패자는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마음이 안정되고 패한 것에 대한 상처가 치유되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한국을 맘껏 비웃고 떠난 꼴이다. 비싼 수업료는 지불했다. 이제 차분히 바둑처럼 복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 과정마다 철저하게 분노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투기자본에 무차별적으로 농락당하지 않을 힘과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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