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중요하고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국정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여당이 반값 등록금 이야기를 들고 나와서 혼란을 부추기더니 야당도 달려들어 난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반값 등록금이 정말로 타당하고 시급한 정책과제인가에 대한 아무런 논의도 없이 불쑥 구체적인 재정투입 방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재정건전성 등 거시적인 문제 제기는 상당히 이뤄지고 있는데 보다 근본적인 그리고 기초적인 미시적 관점에서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별 논의가 없는 것 같아서 이 단문에서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든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대폭 낮추기 위해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재정의 투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그것이 자원배분의 개선을 가져오거나 소득분배를 개선하는 것일 때 충족된다. 효율과 공평이라는 두 잣대를 갖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효율의 관점에서 재정의 투입으로 해결돼야 할 상황은 이른바 공공재로 분류되는 용역(정책서비스 포함)이나 재화의 공급이 요구되는 경우이거나 외부경제가 있는 분야의 민간 활동을 지원해 주는 경우뿐이다.
등록금 지원은 대학 지원과는 구분돼야 한다. 대학의 교육활동이나 연구 활동 중에는 공공재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고 외부성이 있는 경우들도 생각할 수 있다. 기초과학이나 순수학문의 연구, 선도적이고 전략적인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그리고 인기가 없지만 지속적으로 전수하고 발전시켜야 할 분야에서의 교육과 연구 등은 재정 투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경우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략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 특정한 목적에 투입하기 위한 교육도 재정으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일률적인 등록금의 지원은 효율의 관점을 갖고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사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립대학의 경우도 등록금을 전반적으로 낮춰주기 위해서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혹시 대학 진학이 인기가 너무 없어서 대학진학을 유도하기 위한 경우라면 재정의 사용이 어느 정도 합리화될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너무 거리가 먼 경우이다. 혹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재정 지출들이 있는데 그것을 줄여서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면 효율이 개선되지 않겠느냐는 주장 말이다. 그런 부분이 꽤 있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을 빚을 갚거나 세금을 줄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사실 그런 지출들은 대부분 정치인들의 이익에 직접 관련되거나 표 때문에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없애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효율의 관점에서 등록금의 일률적인 지원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그렇다면 공평의 관점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소득세를 좀 더 거둬서 그것으로 대학생 전체의 등록금을 일률적으로 낮춰 준다면 소득분배 지표가 조금은 개선될 여지가 없지 않다. 소득세를 내는 가구보다 대학에 자식을 보내는 가구가 좀 더 많을 수 있고 소득세는 누진적인데 등록금 지원은 획일적이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이 이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것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대답을 듣기 어렵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대학에 가지 못하고 취업한 청년이 대학에 진학한 보다 여유 있고 형편이 좋은, 그리고 평생에 더 많은 소득을 얻을 확률이 높은 또래 청년의 대학 등록금을 부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다른 세금의 경우라면 이러한 불공정 효과는 더욱 커진다. 물론 소득세 이외의 세목을 통한 등록금 지원은 소득분배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훨씬 높다.
만일 재정건전성 등의 이유로 다른 지출을 줄여서 등록금인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경우 전반적인 분배효과는 악화될 가능성이 현저히 더 크다고 본다. 다른 교육관련 예산이나 이전지출 성격의 예산 등을 줄여서 대학생 등록금 인하재원으로 사용하는 경우 분배지표의 악화와 함께 불공정의 결과가 나타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등록금을 내려주기 위해 국방비나 다른 필수 예산들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산을 줄인다고 해도 여전히 불공정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도 재정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난하지만 우수한 대학생의 선별적 지원이라는 목표보다 등록금의 보편적 인하에 초점이 모아지게 되면 가난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 등록금 인하 정책의 더 중요한 불공평성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고등교육을 또래의 80%가 받는 보통교육으로 만들어 놓은 데서 초래된 것이다. 남들 다 가니 안 보낼 수 없는 대학이 됐기 때문에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그러지 않아도 입시전쟁에서 지치고 공부하지 않는 대학생 자녀들, 대학을 졸업을 해도 취업하지 못하는 자녀들과 싸우느라고 상처투성이가 된 부모들을 반값등록금이라는 허황된 이야기로 미혹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