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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4. (금)

고유가 시대의 유류세 인하 논쟁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리터당 2천원선을 돌파하면서 기름값 상승세가 꺾일 줄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최근의 유가상승 진원지는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민주화 운동에 있다. 국제정세의 혼란으로 석유 공급의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국제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중국이 초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경제성장을 위해 국제시장에서 석유와 원자재를 싹쓸이하는 등 전반적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에도 또다른 요인이 있다.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급을 크게 확충해야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공급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유가의 급속한 상승 및 고공행진을 지속하게 하는 근본요인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고유가의 불똥이 정유사를 비롯한 유류 유통과정에서의 폭리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유통구조 개선을 통한 정유사와 주유소의 가격인하와 함께, 유류세 인하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국제유가가 들썩이고 수일내 국내 유가가 인상되는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고통이 극에 달하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유가부담 경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결론적으로 먼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자면 다음과 같다. 국내에서 과점상태에 있는 정유사 사이에 담합이 없는 한 민간 사업자들의 자율적 가격결정 결과를 존중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시장경쟁을 저해할 수 있는 불공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가 상승의 근본원인이 세금에 있지 않으며, 만약 유류세를 인하해 주더라도 그 효과는 매우 잠정적·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가 상승의 원인을 제거해 주는 것이 아니므로 유류세 인하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유류세 인하로 초래되는 막대한 규모의 세수 감소와 그에 따른 부작용,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고소득층에까지 과도하게 세금을 인하해 주는 등의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석유 유통구조 상의 문제로 인한 정유사 폭리 주장과 출고가 인하문제 역시 논란이 많다. 다만 본고에서는 유류세 문제에 집중해 논의하고자 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중 86%가 유류세 인하를 지지한다고 한다. 그만큼 유류세 인하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거세다. 정부로서는 그런 압력을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지지한다거나 원하더라도, 반드시 그런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바람직하다거나 국민경제에 보탬이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술, 담배, 석유 등과 같이 세율이 높은 세목에서는 세율 인하에 대해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세율을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이 항상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초고유가로 인해 상황이 보통 때와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금번 여론조사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류세 인하주장의 배경에는 고유가 현상과 더불어 판매가격 중 세금 비중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세율이 높다는 점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석유는 다른 소비재와 달리 소비시에 환경오염·교통 혼잡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사회적 비용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사회·경제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다. 이는 이미 오래전에 조세론에서 확립된 정설이다. 인구밀도·국토면적·포화도 등을 감안한 혼잡비용은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유류세로 흡수해야 할 사회적 비용 또한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더 높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현행 유류세 수준은 선진국보다 훨씬 낮다. 지난 10여년 이상 우리나라에서 유류세를 전혀 조정하지 않아 10년전 수준의 유류세를 부담하고 있음에 따라 오랜 시간을 두고 초래된 결과이다. ,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세금의 실질가치를 깎아준 셈이다.

 

 지난 30년 동안 소비자 물가는 3배 이상 상승했다. 휘발유 가격은 2.5배 상승한데 머물렀다. 물가수준을 감안한 실질세율은 크게 떨어졌다. 유류세 비중이 판매가격의 절반에 이르기는 하지만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그만큼 실질가격이 인하됐다. 그에 따라 유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은 물론이다. 유가가 치솟지 않았을 때에는 부담을 체감하지 못했지만, 국제유가 급등이라는 외부 충격이 오자 고통이 극에 달하는 것은 바로 지나치게 유류를 많게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유류세를 10여년 전 수준에서 계속 묶어두고 있는 상태에서는 점점 유류 소비가 더 많이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른 고통수준도 더욱 크게 증가할 것이다.

 

 해법은 유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유류세를 인하하기 보다는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유류세를 현실화해 상향 조정하면서 유류 소비 억제를 도모하고 대체에너지에 대한 국내수요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국제유가 상승이 일시적·급진적인 충격에 그치는 것이었다면 한시적 유류세 인하를 통해 충격을 흡수하는 단기적인 정책으로 유효성과 적절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이 국제 유가의 상승이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경우에는, 비록 유류세 인하가 단기적으로 일상생활에 일시적 보탬을 줄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외부 충격에 둔감해짐으로써 종국에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뒤쳐지고, 막대한 세수손실로 인한 정부재원 축소 및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져 서민들의 고통이 더 커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고통스럽지만 현재 상황에서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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