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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7. (금)

교통에너지환경세와 물가

곽태원 서강대 교수

 금융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세계 각국이 원없이 풀어댄 통화가 이제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여기다가 여러 품목들의 가격이 수급 불균형으로 널뛰기를 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염려가 한층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0년대식 '물가관리'가 되살아난 것 같은 정부의 대응이 또다른 걱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가격에 대한 논쟁도 물가관리의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이들 품목에 대한 세금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가정책은 매우 중요하지만 개별 품목의 가격을 '관리'하는 접근은 시장의 가격체계를 교란시켜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할 뿐 궁극적인 물가 안정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가 문제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에 대해서 몇마디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동차용 기름에 붙는 세금은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여기에 15%로 부가 과세되는 교육세 그리고 36%(탄력세율로 현 세율은 26%)로 부가 과세되는 주행세(지방세) 등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종량세로 돼 있는데 기본세율은 리터당 휘발유가 475원 그리고 경유는 340원으로 돼 있다. 이 세금은 상하 30% 범위내의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 있으며 주행세도 같은 범위의 탄력세율제도를 갖고 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휘발유와 경유세금은 각각 529원과 375원이다. 본세가 종량세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부가과세되는 세목들도 저절로 종량세가 된다.

 

 시비를 걸고자 하는 부분은 본세인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세율이 종량세로 돼 있다는 점이다. 1996년에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꿨다. 외국에도 종량세로 운영하는 나라들이 많이 있고 그렇게 하면 유가가 많이 움직여도 세수는 안정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꿨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설득력은 크지 않다. 종량세 전환의 논리적 근거는 이 세금의 경제적 기능과 관련을 갖고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는 이 세금의 목적이 이들 분야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돼 있지만 이것은 '목적세'로서의 목적일 뿐이다.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휘발유나 경유의 소비가 야기하는 외부비용(환경오염, 혼잡, 도로파손 등)을 내부화함으로써 이러한 외부비용요인의 발생을 최적수준에서 통제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비용은 물리·화학·생물학적인 것이기 때문에 연료의 가치가 아니라 수량에 비례해 발생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비용은 소비하는 연료의 가격이 아니라 수량에 비례하는 값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다. 종량세의 근거는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비용을 야기하는 물질의 수량이나 혼잡의 발생 정도는 일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경우 금액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 비용은 통화가치의 변동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데 있다. 일반적 인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면 일정한 수량의 오염물질이 초래하는 피해의 정도가 같아도 그것을 금액으로 표시한 값은 물가상승률만큼 상향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세율을 조정해 주는 방법이 있지만 이것으로 인플레이션에 정확하게 대응하기는 사실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종량세율을 물가에 연동시키는 것이다. 매년 물가상승분만큼 자동적으로 조정되도록 법규로 정해 놓자는 것이다. 그러나 물가연동제도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다. 정작 물가연동이 필요한 다른 세목의 여러 변수들 예컨대 소득세의 세율 구간이나 각종 공제액 등도 아직 물가에 연동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자동차 연료에 대한 세금에 대해서는 하나의 현실적인 방안이 있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가 종가세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추세로 볼 때 물가에 연동한 것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어차피 지금의 종량세도 외부비용의 상당히 근사한 추정치를 반영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외부비용의 정확한 추정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에너지의 소비절약효과가 충분히 나타나게 하는 세제가 현실적으로 괜찮은 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유가격이 많이 오르는 상황에서 일부러 국내 휘발유 가격을 낮춰 주는 것은 물가 안정에는 미미한 도움을 주겠지만 기름 소비를 줄여야 할 때 줄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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