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판한 책인데, 그 중에는 세금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 각국의 소득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추세를 부자감세라는 이름으로 비판한 내용인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부자감세를 합리화하는 핵심적인 논리는 경제성장의 촉진인데, 실제로 부자감세가 경제성장을 촉진시켰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부자감세가 적극적으로 추진된 1980년대 이후 그 이전에 비해 세계적으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졌으며, 현재의 선진국들은 대부분 부자감세 정책이 확산되기 이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이 된 국가들이다. 감세정책을 기반으로 경제가 성장해 선진국이 된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장하준 교수는 이와 같이 단순한 통계를 활용해 명료한 비판을 했으며, 이 명쾌한 설명에 많은 독자들, 특히 부자감세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실제 경제의 움직임과 경제정책의 수립 및 변화는 장 교수가 설명한 것보다는 훨씬 복잡해, 그렇게 간단하게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1984년 영국, 1986년 미국의 세제개혁을 필두로 시작된 감세정책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본소득에 대한 감세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통신기술의 발달, 자본시장의 탈규제·자유화로 인해 경제활동의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각 국가가 자국의 세원 감소를 우려하는 상황이 됐다. 한편 이전에 만들어진 복지정책과 고령화가 결합돼 재정 지출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대돼 세입 확대정책이 필요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가지 정책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자국민의 세부담을 증가시켜 세수입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주요 선진국의 법인세율이 35∼50% 또는 그 이상으로 상당히 높았으며, 소득세도 최고세율이 60% 이상인 국가가 상당히 많았다. 여기서 더 이상 세율을 인상하면 국내 세원의 국외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두번째 대안은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하해 국내 기업활동을 촉진하고 세원의 국외 이탈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외 자본의 국내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과 미국을 선두로 하여 대부분의 국가가 이러한 정책노선을 따라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1980년대 이후의 저성장세는 조세정책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고, 반대로 저성장세가 조세정책의 변화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장률의 단순한 비교만 갖고 감세정책의 효과를 파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저성장을 초래한 다른 요인들을 통제한 후에 감세정책이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OECD에서는 1974∼2004년의 회원국 자료를 이용해 이러한 방식으로 분석했는데, 법인세율 인하와 소득세율 인하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수입의 변화 추이를 보면 세율인하에도 불구하고 세수입은 감소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세, 법인세 세수입 대 GDP 비중이 줄어들지 않았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줬다. 우리나라는 법인세 세율이 1980년대 초의 40%에서 2009년 23%로 인하됐으나 세수입은 GDP의 2%를 밑도는 수준에서 4%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소득세는 60%를 넘었던 최고세율이 35%로 인하됐으나 세수입은 GDP의 2% 수준에서 4%를 초과하게 됐다. 이러한 세수입의 변화는 법인세율과 소득세 최고세율의 인하를 통해 세원의 이탈을 방지하고 세수입을 확보하겠다는 정책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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