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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상속세의 공평성

곽태원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세금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공평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구구각색이다. 공평한 세금에 대한 논쟁이 그치지 않는 한가지 이유가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평이 특별히 강조되는 세목 중 하나가 상속세라고 할 수 있다. 상속세의 공평성은 두가지 기준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피상속인 즉 망자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공평성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속인을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는 공평성이다. 상속세의 존재이유로 제시되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바로 이들 두 기준의 공평성과 직결돼 있다. 하나는 생전에 소득세를 제대로 내지 않았을 가능성 때문에 상속세로 다시 한번 확인과세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이러한 주장을 편의상 '소득세보완설'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상속받는 재산의 유무나 과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출발선의 격차를 상속세로 조정함으로써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하도록 해 주는 사회가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속세의 존재이유로 제시되는 다른 주장들은 이 두가지에 비하면 모두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상속세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부정적 효과들이 상당히 커서 이 세목의 폐지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상당수의 국가들은 이를 실제로 폐지하거나 세율을 크게 인하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 세목에 대한 지지가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위의 두가지 공평성이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 갖고 있는 호소력이 특별히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출발선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미루고 소득세보완설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상속세라고 흔히 부르는 세목은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유산세(estate tax)라고 할 수 있는 피상속자 기준의 과세와 상속자 기준으로 과세하는 상속세 혹은 취득형상속세(inheritance tax)이다. 따라서 소득세보완설에 입각해 상속세의 당위성을 주장하려고 한다면 유산세가 더 타당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이름과 달리 사실상 유산세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득세보완설에 입각해서 공평성을 논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성장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나 민주시민으로서의 태도 등에 있어서는 세계 일류국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는 평가가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본다. 국회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니까 덮어 둔다고 해도 정치지도자나 재계의 리더들,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스스로 질서를 지키고 세법 같은 시민 의무에 관한 기본적인 법규를 존중하는 일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재력가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축재를 했을 가능성이 선진국들보다 높다고 추정하는 것이 큰 무리가 없는 것이라면 상속세로라도 이러한 불공평을 시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속세를 이러한 시각에서 정당화하기 어렵게 하는 한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소득세율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가 사망시에 그것을 일괄납부하는 것이 상속세라고 한다면 과거의 높았던 소득세율, 그리고 소득세의 납세 지연에 따르는 과태료 등을 고려해서 소득세율보다 상당히 높은 세율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납세자들이 소득세를 상당히 납부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현재의 상속세율은 너무 높다고 주장할 수 있다.

 

 현행 제도를 소득세보완설로 정당화 하는데 있어서 더 치명적인 문제는 그것이 수평적 공평성을 크게 훼손하고 또 납세자들의 왜곡된 행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득세를 평소에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간에 아무런 차별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득세를 성실하게 납부하지 않은 사람이 상속세인들 성실하게 납부할 것인가라는 의문까지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 이러한 문제점을 어느 정도라도 보완할 수 있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피상속자가 평생 동안 납부한 소득세(혹은 그 현재가치)의 일정부분을 상속세 과세표준에서 공제해 주는 것이다. 소득세 납부실적이 없는 사람이 많은 유산을 남겼다면 그 사람이 부담하는 세금이 소득세를 정직하게 납부하고서도 비슷한 규모의 유산을 남긴 사람보다 상당하게 더 많도록 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는 상속세의 수평적 공평성을 제고할 뿐 아니라 정직한 소득세 납부를 권장하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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