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의 엄마인 통계청 김영미 조사관은 선천성심장이상과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4살짜리 셋째 딸을 돌보는 문제로 한동안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심장수술은 이미 잘 마쳤지만, 지적장애 조기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을 받아야 해서 그 때마다 오전 반일휴가를 사용했는데, 4개월이 지나니 사용할 수 있는 휴가일수마저도 거의 바닥난 것이다.
결국 휴직을 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우울증 초기증상까지 나타날 즈음 마침 공무원 유연근무제가 시행됐다.
그 덕분에 김영미 조사관은 '시간제근무'를 선택,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세 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제외하여 딸의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주35시간을 근무하게 되므로 주40시간 근무에 비해 그만큼 급여는 줄어들었지만, 휴직을 하지 않고도 치료에 전념하게 된 덕택에 딸아이의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을 보는 기쁨은 줄어든 급여액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병무청에 근무하는 이현준 주무관은 직장생활 시작과 동시에 결혼하고 이내 아이 둘을 연달아 낳았다.
출산 과정에서 얻은 요통으로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야 하느라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 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공문이 내려 왔고, 이현준 주무관은 비슷한 형편의 동료들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와중에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심정으로 시차출퇴근제를 과장에게 신청했다.
걱정과 달리 과장은 "엄마는 건강이 최고이니 마음대로 아파도 안된다"며 기꺼이 이를 승락했고, 덕분에 오전 8시 출근하여 오후 5시에 퇴근하면서 여유 있게 병원치료를 받고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게 됐다.
동료들은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바쁜 연말에 시차출퇴근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건강이 호전되고 육아 스트레스도 덜어 낸 덕분인지 담당 업무평가지표 4개를 모두 최상인 S등급으로 마무리해 업무능률이 이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8월부터 전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입한 공무원 유연근무제가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공무원들을 위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행안부는 유연근무제를 신청해 활용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활용 수기를 공모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현하고 업무 생산성도 끌어올린 우수사례들을 선정, 29일 공개했다.
선정된 우수사례를 살펴보면 시간제근무나 시차출퇴근제 외에도 재택근무·원격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통해 육아와 원거리출퇴근 등으로 인한 고충 해소와 자기계발 등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공무원들의 생생한 경험이 담겨 있다.
공무원 유연근무제는 기존의 획일화된 근무형태를 개인·업무·기관별 특성에 맞게 다양화해 공직생산성을 향상하고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할 목적으로 지난 8월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현재 중앙 및 지자체 6천300여명의 공무원들이 각자의 형편에 따라 시간제근무 또는 시차출퇴근제, 재택·원격근무 등의 근무유형을 선택하여 활용하고 있다.
곽임근 행안부 윤리복무관은 "우리나라 보다 앞서 저출산고령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은 정부 뿐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앞 다퉈 유연근무제를 적극 도입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실현하고 여성과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공직사회에서 먼저 유연근무제 선도모델을 발굴해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민간부문에도 자연스럽게 유연근무제가 널리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행안부는 제도 시행 2년째를 맞는 내년에는 유연근무제가 공직사회 전반에 하나의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홍보와 아울러 관련 규정 정비 등을 통한 제도개선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