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공정'하지 못한 출발점에 서 있게 된다.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야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같겠지만, 경제적·사회적인 여건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부자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가난한 사람이 한번 채무자가 되면, 그 사람은 평생을 대부분 채무자로 살아간다. 한번 금전 채무자가 되면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처럼 살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대 중근동지방에서는 금전 채권자가 이자를 받을 수 없는 제도(신명기 23장 19절과 코란)를 두고 있었으며, 희년(50년)되면, 그 채무가 완전히 소멸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부채를 갚지 못해 노예로 팔려 갔던 사람들이 가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3. 그네들인들 돈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돈보다는 인간을 더 생각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본다면, 채권자의 권리와 채무자의 의무가 '공정'이라는 저울추에서 나름대로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나라 경주 최부자의 이야기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그는 흉년 때에는 대문 앞에 쌀독을 내놓아 배고픈 사람의 굶주림을 면하도록 했고, 흉년에는 고리대금업을 하거나 서민의 땅을 헐값으로 사들이지 아니했다고 한다. 공정이란 이토록 아름답고 우아한 개념인 것이다.
4. 공정의 잣대로 보면 감세정책은 생각할 점이 많다. 동일하게 세율을 인하해도 서민층과 부유층의 부담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서민층을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인하했다고 하자. 그런데 쓸 돈이 없는 서민에게는 그게 무슨 소용이 될까? 소득세율을 각 계층별로 동일하게 인하했다고 하자. 그런데 과세소득이 없거나 적은 서민층에게는 감세액이 그네들 삶에 무슨 의미 있는 효용거리가 될까. 연간소득이 2억원인 사람에게는 10% 인하효과가 2천만원이지만, 소득금액이 3천만원이 되는 사람에게는 인하되는 금액이 300만원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현 정부는 감세정책이 부자계층을 위한 감세는 아니라고 한다.
5. 감세정책의 효과는 분명히 있으며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일시적인 처방에 그쳐야 한다. 공정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면 말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연간 소득이 2억원인 사람에 10% 소득세를 인하한다면, 인하되는 2천만원을 소비할 것이고, 그 소비재를 만드는 기업은 매출액이 늘어서 그 기업이 법인세 납부액이 증가되면, 결국 소득세 인하가 법인세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분명 있다. 그런데 그 인하된 2천만원으로 빚을 갚는다고 하면? 그 돈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샀다면? 부동산 투기를 했다면? 이때는 정부가 부자계층에게 빚을 갚아 주거나 땅을 사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더군다나 그 법인세율조차도 인하하겠다고 하면, 감세의 선순환 효과는 반감되는 것이다.
6. 이상적으로 생각해 보는 공정사회 중의 하나로 2천여년 전의 초기공동체의 생활을 들 수 있는데(사도행전 2:44―45),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데로 나눠 줬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 필요한 금액의 돈이 얼마일까? 내가 얼마만큼 필요하다고 사회에게 말할 수 있고, 사회는 그가 원하는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공정사회의 최고 정점이 아닐까. 물론 필요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보장되는 수준을 의미할 것이다. 이를 하는데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이 세금이다. 그런데 공정사회를 한다고 하면서 감세를 하면 무슨 재원으로 이를 감당할 것인가? 방법 중의 하나는 빚을 내어서 하는 것인데, 이는 열매는 내가 따먹고 설거지는 남에게 미루는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공정사회 구현과는 거리가 멀다.
7. 최근 미국에서는 연간 100만달러 이상 고액소득자들이 자기들에게는 감세를 하지 말고 과세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자기들에게는 감세가 필요 없고, 미국은 책임있는 방법으로 건전한 재정의무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일부 고소득층에서 부유세를 인하하지 말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이들인들 돈이 소중하고 귀한 줄 모르겠는가. 우리나라는? 과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G20 회의에서도 재정건전화를 합의했고, 국가재정법이나 지방재정법의 제정취지도 현 정부의 감세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감세정책은 철회돼야 한다. 공정사회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집권층에서 '공정사회 추구'라는 말을 하는 것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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