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지방세 체납징수업무의 민간위탁 방안'이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가 한국조세연구원과 신용정보협회 공동으로 개최된 적이 있다. 토론회 주제발표문을 보면, 여러 부작용을 우려해 많은 전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체납징수업무의 민간위탁방안에 대한 선택권을 지방정부에 허용하자"는 것이 그 기본 내용인 듯하다. 이런 정책토론회가 있었던 탓인지 요즈음 조세관련 인사들 사이에서 이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것을 적잖이 듣곤 한다.
납세는 권리이기도 하며 의무이기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납세행위를 포기한 데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을 것이다. 생활 상으로나 사업 상으로 사정이 어려워져 못 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악덕 체납자들도 있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한 사람마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공권력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어느 경우이든 사회적 가치를 담아 기준을 정해서 체납징수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징수상의 '효율성'을 이유로 민간용역회사에 넘겨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체납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체납을 줄이기 위해 공적인 징세시스템을 바꿔 볼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 보지도 않고 바로 민간에게 넘겨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공적인 징세권의 일부를 민간용역회사에게 맡기는 것이 기본적으로 조세의 본질적 양상을 해치지 않을런지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릇 조세는 "국가가 나라 살림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또는 사회경제정책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공권력의 강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징수하는 과징금"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여기서 '정책적 목적'이라 함은 자원배분이라든가 소득분배, 나아가 경제안정성장 등 제반 국민경제의 현재 상태가, 정부가 사회적 가치를 담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있을 때 바람직한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데 조세수단을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국민의 생활을 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상태로부터 더 낫다고 생각되는 상태로 바꿔 가기 위해 조세를 징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초점은 조세는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과정에 활용돼야 한다는 것인 바, 미국의 대법관을 지낸 Oliver Wendell Holmes가 "조세는 우리가 문명사회에 살게 된데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라고 일찍이 갈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초점은 조세는 그와 같은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공권력의 강제력'에 의해 징수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 징수를 위한 공권력 행사의 기준은 당연히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일정한 가치기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조세징수권을 민간에 맡긴다는 것은 비록 체납징수권이라는 단서가 붙은 행위이기는 하지만 공권력이 담당해야 할 징세권을 민간에게 맡긴다는 의미가 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민간이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경우 임무수행 기준은 공권력의 경우와는 다르다. 징수과정에서의 납세자 권익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등을 고려해 징수대상과 징수방법에 일정한 제약을 가한다고는 하지만, 민간의 행동기준은 어디까지나 보수 획득에 있으며 그 보수가 '사회적 가치'와 연계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징수금액'에 연계돼 있기 때문에, 공권력 행사의 경우와 다른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민간위탁업체는 체납액을 징수하지 못하면 보수를 지급받지 못할 것이고 계약된 보수를 지불받으려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징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다 작은 비용을 들여서 주어진 성과를 내려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효율적'인 임무 수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과정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민간이란 자기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인간으로 전제돼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란 틀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그러한 사회적 틀이 견고해져 감에 따라 점점 더 자기 이익 극대화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우리들의 심성이 점점 더 기계적이고 계산적으로 돼 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마치 그러한 활동을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음을 자주 목격한다. 공공부문의 역할 수행과정에라도 그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가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어야 전체적으로 사회가 조화를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