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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보편적 복지의 역설

곽태원 교수(서강대)

 보편적 복지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것은 아직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논란이 됐던 전면무상급식 같은 것이 보편적 복지를 잘 나타낸다. 상위 20%가 좀 더 부담해 80%를 보다 행복하게 한다든지 요즘 여당에서까지 거론되는 70%까지 복지혜택이 확대돼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넓게 보면 보편적 복지의 영역에 속하는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복지 혜택을 받는 사회는 정치적으로 매력이 있다. 정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어진 자원으로 제공되는 혜택에 아무도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이 최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사실 즉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려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고 그것이 어려우면 혜택의 수준이 얇아질 수밖에 없다는 기본적인 예산제약의 원리를 모두가 외면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이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회주의가 실패했던 원인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화려한 수사로 달콤하게 포장하기도 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칠게 비판하거나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변명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문제에 대한 대답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그러나 상식적인 문제들을 몇 가지 들어본다.
 첫 번째의 문제는 모두에서 이야기했던 재정의 문제이다. 급여의 대상을 확대하면 재정 수요가 늘어나며, 재정 팽창을 피하려면 급여의 질을 떨어뜨려야 한다. 특히 이 문제는 다수의 복지를 위해 집중적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이것은 무상급식 전면 실시라는 아주 작은 분야에서의 보편주의적 전환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문제이다. 다른 예산을 줄이면 된다는 이야기는 매우 무책임한 대안이다.
 두 번째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재정의 문제에서 파생된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게 하려면 국민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70%이든 80%이든 다수 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시스템을 운영하려면 상위 10∼20%의 부담이 집중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지금도 세금의 대부분을 그 계층이 부담하고 있는데 보편적 복지 정신이 적용되는 항목이 늘어날수록 이 계층에 기 부과되는 부담의 짐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강제적인 부담이 늘어나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세계화된 세상에서 부담이 계속 늘어나는 고소득계층이 국외로 이주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수혜계층의 생산성도 평균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세 번째로 정의의 수준이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고소득층의 부담이 늘고 서민 중산층의 혜택이 커지면 분배가 개선돼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들 중에서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성공한 사례가 없었던 것처럼 복지를 보편화함으로써 정의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믿기 어려운 것이다. 시장에 의한 분배질서는 기본적으로 매우 공정한 것이다.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의한 격차 확대의 문제가 있지만 권력과 자의성의 개입에 의한 왜곡과 부패의 여지는 매우 낮다. 복지의 보편화로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는 공공의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배분된 재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비리와 부패 그리고 비효율이 만연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은 경험적 진리이다. 그런 일들을 당하면서 받는 상처와 억울함은 공정한 사회를 크게 후퇴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복지의 보편화로 말미암아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계층은 최저소득계층이 될 것이다. 물론 전반적인 효율의 저하로 모든 국민들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이것이 보편적 복지의 가장 큰 역설이라고 본다. 넉넉한 집 아이들까지 공짜 점심을 먹이느라고 식단의 질(혹은 다른 공공서비스의 질이나 양)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한 쉽고 명확한 대답은 집중화(targeting)이다. 정말 지원이 필요한 계층을 식별해 충분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결국은 국민의 혈세인 재정 재원을 효과적이고 보람 있게 쓰려고 애쓰는 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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