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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4. (금)

공정사회를 지향한 세제: 조세탕감제도를 도입하자

안창남 교수(강남대)

 1. 현 정부는 이제 '공정사회'를 추구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최근 대통령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했던 시절의 대통령 발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현 정부의 어젠다(agenda)가 변하고 있다. 집권 초기의 '기업친화정책(business friendly)'에서 집권 중기의 '친서민정책'으로 그리고 이제 후반기에는 '공정사회'로 가고 있다. 앞의 두 가지가 이뤄졌으니 이제 공정한 사회까지 이루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앞의 두 가지를 못 이뤘으니 공정사회라도 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업' '서민'과 같은 구체적인 단어보다는 '공정'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한 구석도 있다. 흔히 업무에 자신감이 떨어질 때, 애매모호한 단어를 사용해 목표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2. 공정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공평하고 올바름'일 것이다. 무엇이 공평하고 올바른 것인가는 법학이 아니라 철학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올바름'에 이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를 세법의 차원으로 시각을 좁혀서 보면 공정사회의 '공정'이란 조세평등주의 또는 조세공평주의의 '평등'과 '공평'의 개념과 일부 유사하지만, 그 둘을 포함한 다른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 즉, 가치지향의 방향이 '선하고 옳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조세평등주의와 조세공평주의에 공정을 덧붙여 보시라. 즉 '공정한 조세평등주의', '공정한 조세공평주의'라는 말로 바꿔 보면 그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정이란 말이 철학적 의미가 강한 단어라고 한다면, 이를 녹여내어서 국민이 알기 쉽게 이해하고 행동하는 지침으로 환원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집권층의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돼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프랑스 헌법의 자유·평등·박애라는 구호가 '톨레랑스(Tolerance:관용)'라는 것으로 구체화됐듯이 말이다.
 3. 사정이 어찌됐든, 현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겠다고 하니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그 중 하나가 조세탕감제도의 도입이다. 이 제도의 골자는 성실하게 사업을 한 자가 경영이 악화돼서 세금을 낼 수 없는 형편에 있는 경우, 조세채무를 전부 또는 일부를 탕감해 줘서 다시 제기하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이는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기업인 패자부활법'과 유사하다. 유럽에서는 '두 번째 기회를 용납하는 문화법'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기업인들의 창업의욕 고취와 재창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세금 측면에서 이를 해보자는 것이다.
 4. 사실 세무조사를 하다 보면 기업의 딱한 사정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세법의 규정대로 하면 20억원의 추징세액이 나온다고 하자. 이를 그대로 고지할 경우 그 기업은 부도가 눈에 보인다면, 이 때 세무공무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부분은 눈을 감고 봐주자니 감사원의 감사나 국세청 감찰의 '따뜻한(?)'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법대로 그냥 고지서를 발부하고, 체납이 되면 압류를 하며 부족분은 결손처분해 그 기업자를 '깨끗이' 그 마당에서 퇴출시키고 만다. 물론 징수유예제도가 있지만 그 담보는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설혹 경영환경이 좋아지더라도 조세채무가 기업회생의 발목을 잡게 된다. 조세탕감제도는 성실한 사업자의 조세채무를 탕감해서 기업의 회생을 돕자는 것이다.
 5. 외국의 입법례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 성실한 납세자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세금을 납부하지 못할 사정에 처해진 경우, 과세관청 또는 해당 납세자가 조세감면을 사법부에 신청하는 '조세감면신청청구제도(Juridiction Gracieuse)'를 두고 있다. 이 제도는 과세처분의 실익이 없는 경우, 과세관청은 일단 세법에 따라 과세처분을 일단 하고, 동시에 확정된 조세채무에 대해 과세관청은 국가를 상대로 하여 해당 납세자의 조세채무의 경감이나 탕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과세관청과 납세자가 조세채무에 대해 타협(Comprise)을 통해 조세채무를 탕감 또는 조정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위와 같은 제도가 우리나라 징수유예제도와 차이점은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유예'한다는 것이고 프랑스나 미국은 '탕감'을 통해서 납세자의 재기를 도와준다는 점이다. 납세자를 위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그 체감온도에 차이가 있다.
 7. 그러면 반론이 있다.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사람과 이른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또한 과세관청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돼서 부정의 소지가 있다는 것과 아울러 재산을 고의적으로 빼돌린 경우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조세평등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달리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조세탕감제도를 하면 성실히 납부한 사람과 평등에서 역차별이 있을 수 있다.
 8. 그러나 '공정한 조세공평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사람은 한두어번 실수는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 세금을 내려고 오는 존재가 아니라면 그리고 그 기업이 소생을 해서 탕감받은 액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단지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법규에 따라 징수나 체납처분을 해서 그 기업의 장래를 '싹둑'잘라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아닌가? 이래서 공정이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써야 그 진중한 맛이 난다. 아니, '멀쩡한'부자에 대한 감세도 하는 판에 성실한 납세자를 구제하는 것을 못할 이유도 없지 않는가? 공정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니 그 도입을 한번 검토해 보자.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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