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언론에 드러난 내용들을 보면 광복절 축사에서 언급된 통일세가 특정한 세목을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추후에 발생할 통일 비용에 대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인데, 조세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논점은 소득의 재분배이다.
세금은 정부가 반대급부 없이 국민들로부터 강제로 징수하는 금전이며, 징수한 세수입은 다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용도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세금을 부담하는 자와 세수입의 사용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자가 서로 다른 것이 일반적이다. 재원의 용도가 명확하고 그 재원의 사용으로부터 혜택을 받는 자가 명확할 경우 그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목적세를 징수하고 세부담은 그 목적세의 혜택을 받는 자 즉, 수익자가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재분배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재원의 용도를 특정하지 않고 세금을 징수하며, 세수입은 별도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사용하게 된다. 이를 보통세라고 하며, 보통세의 경우에는 소득재분배가 불가피하다.
통일세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재분배를 유발하는데, 첫 번째는 세대간 재분배이다. 만약 통일이 30년 후에 일어난다면 지금 경제활동을 하는 자가 통일 이후에도 경제활동을 하여 정부가 지출하는 통일비용의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이러한 경우에는, 통일세라는 것이 용도는 명확하지만, 세대간 재분배를 유발해 수익자부담원칙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 경우 목적세 형태의 통일세를 도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한편 통일이 임박했거나 통일 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면 이와 같은 세대간 재분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동일한 세대 내에서의 재분배이다. 세목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자가 다르다. 부가가치세는 거의 전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득세는 소득이 있는 자로서 소득액이 일정 규모를 넘는 자들이 납부한다. 현재 소득이 있는 자 중에서 소득세를 납부하는 자는 약 절반 정도 된다. 법인세는 법인이 납부하게 되는데, 실질적으로는 법인의 주식을 소유한 자와 법인에서 월급을 받는 근로자에게 부담이 귀착된다. 재산세는 재산을 보유한 자가 납부한다. 그러면 통일 이후 정부가 사용한 통일비용의 혜택을 많이 받는 집단은 어느 집단인가? 어떤 집단에게 세금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수익자부담원칙에 부합하며 의도하지 않은 소득재분배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통일 비용을 대비해 납세자의 세부담을 증가시키는 경우에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논점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세부담이 증가하면 납세자들은 세부담을 피하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되며, 그러한 행동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세금을 1원 증가시킬 때 국내총생산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를 조세의 한계효율비용이라고 하는데, 그 비용은 납세자가 세금을 피하기 용이한 세목일수록 크다. 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중에서는 법인세가 가장 크고 소비세의 효율비용이 가장 낮다.
통일세를 언제 도입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논점들의 중요성이 달라질 수 있다. 통일이 아직 요원하다면 세대간 재분배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며, 통일이 임박한 상황이거나 통일 이후에 세금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면 세대내 재분배와 필요한 재원의 규모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