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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4. (금)

해외주재 세무관을 대폭 증원하자

안창남 교수(강남대)

 며칠 전 동남아시아 소재 사회과학연구소와의 세미나 참석차 그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세미나가 끝난 뒤 현지 주재 대사 및 관련자들과 저녁모임에서 나온 얘기이다. 그곳의 개혁과 개방의 성과, 그곳 여성의 한국남성과 결혼 등의 이야기 끝에, 그곳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애로사항 얘기가 나왔다. 대사관에서 제일 필요로 하는 인력 중의 하나가 세무관인데, 인력 부족으로 우리나라 기업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기업은 '좋은 게 좋다'고 적당히(?) 해결하고 있는데, 이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거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곳 세무공무원들이 어지간히 우리 기업들에게 딴죽을 걸고 있는 모양이다.
 1. 선진국형 부패와 후진국형 부패의 행태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후진국으로 갈수록 하위직 공무원의 부정과 부패가 심하고 선진국으로 갈수록 고위직의 부패가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뭘까? 선진국의 세무행정은 하위직 공무원의 '판단'이 아니라 이미 짜여진 '매뉴얼'에 따라서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위직이 부정에 개입될 소지는 적은 대신에, 매뉴얼 자체에 접근과 수정이 가능한 고위직의 부정이 몰려 있다고 본다. 반대로 후진국으로 갈수록 법과 행정체계가 미흡하고 규정이 잘 정비돼 있지 않아서, 하위직 공무원의 '사실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부정과 부패가 기생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무조사 과정에서 하위직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후진국 형이고, 아예 세무조사대상 명단자체를 빼주는 것은 선진국 형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를 봐도 그렇다.
 2. 증원이 안 되는 사정
 사정이 이러한 데도, 과세관청에서 해외주재관의 증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아마도 이명박 정권의 통치철학인 '작은 정부 구현'과 어긋난다는 것일 것이다. 작은 정부 구현을 하겠다는데 뭐라 할 말은 없지만, 그러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뭔가? 앞뒤가 맞는 얘기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를 좋게 해석하면 "일당백을 하시요"라는 것이고 그 반대로 얘기하면 "세상 물정 모른다, 비전과 개념 및 철학이 없다"가 아닐까.
 현재 해외에 진출한 내국기업이 4만6천개가 넘는 데도, 해외주재 세무관은 국세청 5개 국가에 6명, 관세청 5명이 고작이다. 우리나라 법인의 숫자가 약 40만개 정도이다. 이를 관리하는 국세청 공무원은 2만명 정도이니, 해외주재 세무관은 적어도 200명 정도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편다면 말이다.
 3. 해외탈세정보 수집을 위한 세무관
 해외 주재관의 역할 줄 하나는 해외탈세정보 수집이다. 현재 6명 정도 해외 주재 세무관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이 분야에 대한 증원도 필요하지만, 그러나 이런 업무는 해외 주재관이 아니더라도 조세조약의 정보교환 기능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솔직히 국세공무원이 '비밀요원 훈련'을 받지도 않았는데 어디 가서 무슨 수로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런 정보들은 그 분야에 전문가인 정보부처를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해도 선진국 몇 개 나라 정도일 것이다. 시급성이 덜한 분야이다.
 4. 해외진출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세무관
 아마도 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자기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세무관일 것이다. 자기 뒷조사나 하는 공무원을 누가 반길 것인가. 과세관청은 본연의 업무인 탈세자료 수집은 뒤로 하고 우선 기업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초기의 납세자 보호담당관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세관청의 자세가 이렇다면 기업들이 '술술' 자기들의 고충을 얘기해 줄 것 아닌가. 기업은 이런 세무관을 원하는 것이다. 매만 들고 설쳐대는 엄한 부모 밑의 자식들이 누가 잘못을 이실직고하겠는가. 결국 겉돌다가 길이 어긋나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 규정 등에 따라 세무주재관의 증원이 어렵다면, 그 곳에 설립된 우리나라 기업의 단체에(예:상공회의소 등)에 장기 출장이든 또는 파견의 형식을 갖춰서 '실질적'으로 주재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업의 고충을 들어준답시고, 우르르 현지에 몰려가서 그 무슨 '관민 합동 세미나' 한두어번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5. 해외주재 세무관의 조건
 외국에 파견된 주재관이 대부분 헌신적으로 일을 하지만, 노력과 업무의 중요성 및 성과에 비해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극소수의 경우이겠지만, 우리 기업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자기 상관의 공항 영접에 더 열중이고, 골프접대 및 승진TO 확보 및 보직을 받지 못하는 자의 해결방안으로 이용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후진국에 파견되는 세무주재관은 그런 목적으로 파견돼서는 안 된다. 고위직이 와서 괜히 자리나 차지하고 있을 일도 아니고, 오히려 팔을 걷어 붙이고 현장에 나가는 실무급이 훨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는 현 정권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도 맥이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당 국가의 언어가 되는 사람이어야 하고 실무에 밝아서 그 곳 공무원과 '직접' 협상을 하여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시쳇말로 "세무공무원끼리는 국적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서로 통하는 법"이다. 우리 기업이 많이 진출하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200명쯤 내보자. 정부의 결단과 과세관청의 노력을 기대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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