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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증세 논란을 다시 생각하며

우명동 교수(성신대)

나라가 할 일이 많다. 천안함 사태 이후 국방의 취약성을 보강하기 위해 국방비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나가기 위해 각종 경제사업에 대한 지원적인 활동을 더 늘려야 한다고도 한다. 더구나 거듭되는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필요에 의해 재정지출 증대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정의 기치로 내걸고 있는 녹색성장을 위한 환경친화적 성장정책의 추진도 재정 지출이 수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지출 요구가 더 늘어나고 있는 것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흔히 일컫는 국제적인 '조세경쟁'과정에서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에 대한 하향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한 요구는 경기 후퇴의 원인을 공급자들의 취약해진 유인에서 찾는 공급경제학적 전통에서 나온 것임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우리나라도 유사한 이유로 2008년 이래 소득세, 법인세 등 주요 세목에 대해 몇차례에 걸쳐 세율인하 조치가 단행된 적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세출과 세입 사이에 갭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에 정부로서는 그것을 메우기 위해 부채에 의존하게 되어 결국에는 국가채무 규모가 날로 늘어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관료나 논자들에 의해 증세 필요성이 제기되곤 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율이 현재(2007년 기준) 21% 수준으로, 같은 해 OECD 평균수준 26.7%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임을 고려해보면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등 주요 세목에 대한 기존의 감세기조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부가가치세나 개별소비세 같은 소비세 부담을 늘리자는 주장이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본다.
 흔히 재정은 국가활동의 얼굴이라고들 한다. 국가활동의 외형적 지표는 재정지출의 규모와 구성으로 나타난다. 일반정부 주요 세출구성을 보면('Government at a Glance 2009', OECD에서 발표한 2006년 자료), 국방비는 OECD 평균이 3.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9.2%, 경제사업비는 OECD 평균이 10.6%인데 우리나라는 21.3%를 나타내고 있어, 우리정부가 국방과 경제사업 부문에 OECD 평균에 비해 2∼3배에 해당하는 상대적으로 큰 지출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사회보장비(social protection)는 거꾸로 OECD 평균이 34.3%인데 우리나라는 12.4%로서 지난 국민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상당 수준 제고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OECD 평균의 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성과는 다른 OECD 나라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OECD(Statistics Portal)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2008년 근로시간당 GDP 수준이 25.3$로 OECD 국가들 평균 41.8$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크게 부진하게 된 것을 두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난 정부시절 복지비에 대한 과도한 지출의 결과로 파악하는 견해를 보이곤 한다. 물론 나라마다 특수성이 있기에 단순한 지표 하나로 한 나라활동의 성격을 온전히 읽어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지표를 보면, OECD 평균의 반에도 못 미치는 사회복지 지원활동을 보고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졌다고 하면 우리보다 배가 넘는 비중을 그 쪽에 지출하고 있는 나라의 높은 생산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정부활동의 구조적 상황이 위와 같은 데도 증세를 하자는 주장이, 그것도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등의 세부담은 낮추면서 소비세 중심의 증세를 하자하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로 부자들의 거센 반란이 일어났다면, 지금 소비세 중심의 증세를 한다면 이제야말로 일반 시민들의 조세반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한 사회에서 조세가 갖는 의미를 보고자 하는 경우 단지 조세만의 문제로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난 날의 조세 역사를 보노라면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에 충격을 주는 조세부담은 많은 경우 조세저항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정치적 틀의 변화로까지 이어져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릇 증세든 감세든 조세부담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 조세를 재원으로 이뤄지는 국가활동의 구조적 특성을 먼저 관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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