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소득세 체계는 금액으로 표시된 공제한도나 세율·공제구간 등의 범위를 법률로 정하고 있어 세법 개정 없이는 물가가 변동하더라도 그런 효과를 중화시켜 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따라서 현행 소득세 체계하에서는, 물가가 상승해 명목소득이 증가하면 세부담도 덩달아 증가한다. 아울러 누진세율체계로 인해 더 높은 세율로 과세되는 소득비중도 커진다. 그 결과 소득에서 차지하는 소득세 부담의 비중을 나타내는 실효과세율도 크게 상승한다. 이런 상황은 실질소득이 증가하지 않더라도 물가상승에 따라 명목소득이 증가하는 경우에 예외 없이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목소득 증가율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함으로써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경우에도 실질세부담은 계속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흔히 세법개정을 통해 세율이 인상되거나 공제수준·한도가 축소되는 경우만 증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증세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세법개정 여부뿐만 아니라 실질소득의 변화가 없는 경우에도 실효세부담률의 변화를 초래하는 요소가 과세체계 내에 내재돼 있는지의 여부도 함께 검정해 봐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현행 소득세 체계는 세법개정 없이도 매년 실질적인 증세효과를 나타내는 내재적 장치를 구비하고 있다. 물가변동에 관계없이 공제액이나 각종 구간이 일정하게 고정돼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공제대상자 1명당 150만원씩 공제해 주는 기본공제의 경우 물가가 10% 오르면 165만원을, 50% 오르면 225만원으로 조정해 줘야 소득세 납세자가 체감하는 실질세부담이 일정해진다. 그러나 현행 체계에서는 물가수준에 불구하고 동일한 금액을 공제해 줌으로써 물가가 상승할수록 세부담 측면에서 납세자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현상은 물가상승률이 커질수록 심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해 미국을 비롯해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소득세 체계내에 물가연동요소를 도입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효세부담률의 과도한 상승현상을 방지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해 물가연동제 문제가 주요 정책현안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소득세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의견을 개진하지는 않고 있지만 내심 부정적인 의견이 강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에서도 현형 체계의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물가연동제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에 대한 믿음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일단 물가연동제가 도입되면 특별한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한 해당세법(소득세법)에 대해서는 세법개정을 하지 않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도한 세법개정으로 인해 세제가 엉망이 되고 재정수입 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지난 20여년간의 국회행태를 볼 때 거의 매년 소득세 경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세법개정이 국회차원에서 입안·통과됨으로써 물가연동제 도입의 전제조건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이 쉽지 않다는 데 대해 일정 부분 필자도 공감한다.
따라서 물가연동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상기의 현실을 생각하면 소득세 물가연동제 도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소득세 물가연동제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근의 소득세제 개편패턴을 보면 매번 중후상박식 개편을 통해 고소득층의 부담은 되도록 더 극명해지도록 하는 한편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약 절반 정도의 면세자를 그대로 유지한 채 상당한 정도의 세금부담 능력이 있는 중산층 소득자에 대해서는 '서민'이라는 용어와 함께 계속 소득세 부담을 경미하게 유지함으로써 소득세 부담구조의 왜곡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써 근로·종합소득세의 경우 상위 10%의 납세자가 전체 세수의 90% 이상이라는 기형적 세부담 구조를 초래해 조세로 인한 왜곡이 심각하다. 그로 인한 소득세의 누진도도 가히 세계적 수준이다.
누진세율 구조를 가진 소득세제가 노동공급 의사결정에 매우 왜곡적인 조세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알려져 있으나 현재의 소득세 부담구조가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 매우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그런 문제를 하루 빨리 해소할 필요가 있다. 해소가 어렵다면 부작용이 매우 심화되지 않도록 최소한 물가연동제만이라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국회 모두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머리를 맞대고 소득세의 합리적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 후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적·전향적으로 검토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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