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권에는 조·용·조(租·庸·調)라는 오래된 조세제도가 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이 제도가 도입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에서 용(庸)은 노역세(勞役稅)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노동을 직접 제공하는 방식으로 납부하는 조세였다. 이러한 제도는 서양에도 있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역세를 물품이나 금전으로 대납할 수 있는 제도도 일찍부터 발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의무병역제도가 용(庸)에 해당하는 일종의 조세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용(庸)을 거론하는 것은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 이 제도가 수평적 공평의 원칙을 얼마나 심하게 훼손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의무로 부과되고 있는 이 부담은 우선 남성에게만 부과된다는 면에서 수평적으로 불공평하다. 남성 중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부담을 면제받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공평한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타당하지 못한 점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신체상 약간의 약점이 있어서 신체검사에 불합격해 병역의 의무가 면제되는 경우 그 사람이 군인으로서 복무하기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갖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입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신체검사에 통과된 사람이 부담해야 하는 수십개월의 복무를 완전히 면제해 주는 것은 공평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군 복무를 하는 사람들 간에도 많은 불공평이 나타날 수 있다. 복무자들의 복무 위치나 부여된 임무에 따라 위험도나 복무의 강도 또는 어려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전으로 납부하는 조세의 경우 매우 미세한 단계까지 공평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노역세의 경우 이러한 세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직장의 경우 작업의 난이도나 위험도 등에 따라서 보수나 수당에 차등을 두고 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복무하는 군인들은 그렇지 않은 군인들보다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천안함 사건에서처럼 임무 수행 중에 사망이나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 당사자나 가족의 피해와 부담은 엄청난 것이다.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에 대해서 공평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군 복무를 일종의 노역세로 인식한다면 군 복무가 생명을 요구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긴 하지만 생명을 바친 군인들은 과도한 부담을 진 것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과부담을 시정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무복무자인 사병들의 전사에 대해서도 장교나 부사관 못지않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사병들의 경우 국가는 이들의 과부담을 '환급'해야 하는 채무자의 입장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신속하고도 충분한 보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병역의 의무를 효율적이면서도 보다 공평하게 부담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제도 개혁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노역세를 물품으로 대납하는 것이 비리나 부조리의 수단으로 사용된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제 복무를 면제받는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금액의 '병역세'를 부담하게 한다거나 복무 중 사망이나 부상 등으로 인한 장애 등에 대한 보상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임무의 난이도나 위험도에 따르는 적절한 특별수당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안도 연구해 볼 만 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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