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살림살이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해당 회계연도의 예산안을 작성헤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가 이를 해당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의결해서 확정된다. 예산은 세입예산과 세출예산으로 구분되는데, 세입예산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바로 예산안 제출시기에 발표되는 세제개편안이다. 이를 바탕으로 예산실에서 세입예산을 확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제개편안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세제개편안 중 부가가치세의 면세범위 축소방안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아울러 앞으로 10년동안 '먹을거리' 창출을 위한 R&D 세제지원,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세제지원 등은 나름대로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고 본다. 반면, 서민경제 살리기와 거리가 먼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전자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부과 등은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래에서는 이번 세제개편안에 대해 몇가지 시각에서 정리해 봤다.
1. 경제살리기에서 재정건전성 유지로 정책 전환?
이번 세제개편안의 특징은 정부의 재정건전성 유지를 하고자 하는 노력이 묻어져 있다. 이는 작년의 이른바 '부자감세를 통한 경제살리기'라는 구호가 여론의 역풍을 받아서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정부가 국가의 재정건정성 유지를 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고 본다. 세제실의 존재 목적이 국가 살림살이를 위한 수입(세수) 확보라는 점에서 본다면, 당연 균형예산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누가 무어라 해도, 가정이나 국가나 빚이 있다면, 늘 걱정 속에 살 수밖에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주도한 이래, 세입예산이 부족한 해가 거의 없었다. 이를 위한 세제실 및 국세공무원의 노고와 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그와 같은 흑자예산 덕분에 우리나라가 IMF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역시 감세정책이 주된 내용이다. 일부 '부자 증세'의 내용과 '서민감세'의 내용도 있지만, 그 내용은 소소하고 법인세율이나 소득세율의 인하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법인세율이나 소득세율이 낮은 나라가 몇 나라나 되는가? 이런 주장을 하면 우리나라와 경쟁관계에 있는 아시아권 국가의 세율이 낮다는 반론을 하는데, 1970년대 후반 이래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펴면서 미국이나 유럽 및 일본을 상대했지, 언제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를 염두에 두고 국가정책을 짰는지 묻고 싶다. 선진국과 시쳇말로 '맞짱'을 뜨면서, 우리나라 휴대폰, 선박, 자동차, 철강, IT 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이 생겨난 것 아닌가?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아시아를 경쟁상대로 했다면, 아마도 지금쯤 일본의 '하청국가' 수준이 됐을 것이다.
2. 시장경제에서 중도실용으로 전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기조가 '시장경제'에서 형식적일지는 모르지만, '중도실용'으로 전환되고 있음은 본인 스스로도 여러차례 공개석상에서 밝힌 바 있다. 일부 인사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MB노믹스'의 본질은 서민중시정책이라고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서민을 중시한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 수 있을까. 이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40% 이상으로 상승했는데, 이는 초기의 20% 내외보다는 월등하게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한번 물어보자. 작년엔 왜 그런 얘기가 안 나왔는가? 분명 시장경제주의의 목표와 중도실용의 목표가 다를진데, 경제정책이나 조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이래서 중도실용정책의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는 주장이 생기는 것이다.
하여간 작년과 올해의 경제여건이 큰 차이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작년에는 부자감세를 하더니 올해는 갑자기(?) 부자 증세를 하겠다고 하는 방향전환에 대해, 당초 감세론을 지지했던 학자들은 어떠한 입장인지 궁금하다. 시장경제주의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즉 '시장경제주의→작은 정부→감세정책'의 논조가 맞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 시절 있었던 조직이 비대하다고 하여, 현 정부 초기에 폐지했던 부처들이 다시금 부활되거나 오히려 전 정부보다 더 비대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본적으로 서민 중시의 정책이란 이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많이 들어감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데, 그렇다면 감세론은 계속 유지돼야 하는가?
3. 행정부의 세제개편에서 국회의원의 세제개편?
우리나라 헌법상 세입예산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법률은 주로 행정부에서 작성해 입법부로 제출하지만, 국회의원 스스로도 세법개정안(주로 조세특례제한법상 조세감면 또는 비과세 추진 및 연장)을 제출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세법조항 하나하나가 몇십억원 이상의 조세감면의 혜택을 얻을 수 있으므로, 사력을 다해서 입법을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해당 세법 개정안을 세제실에 요구를 해봤자 '퇴짜'를 맞을 확률이 많아서, 차라리 상대적으로 '쉬운' 국회의원을 통해서 의원입법 형태로 세법을 개정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의 경우, 의원입법 형태를 통해서 조세감면 발의를 한 경우가 수십건은 족히 넘는다.
일반적으로, 그래도 세제실의 공무원은 국가 전체의 운영을 보고 세제를 짜는데 비해, 국회의원은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입법을 하는 것이 사회통념일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입법활동 중 국가의 세입 감소가 있는 부분에 대한 헌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프랑스 헌법 제40조에 따르면 '국회의원제출 법률안 및 수정안은 그 채택이 국고수입의 감소나 국고지출의 신설 또는 증가를 초래할 경우에는 이를 수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행정부의 국회에 대한 불신에 따른 것으로서 입법부가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한 결과로서 스스로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는 헌법개정사항이다. 도입 여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4. 도덕적인 개인에서 비도덕적인 사회로?
위에서 언급한 갈등관계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나는 세금을 내고 싶은데 사회(세법) 이 막고 있는가 아니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데 사회(세법)가 강요하고 있는가? 사실 빌 게이츠처럼 사회나 국가를 위해서 세금을 더 내겠다는 사람도 분명 많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갈등에 상당수 학자들은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인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라는 책을 통해서 시사점을 얻고 있다. 이 책은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시 자본주의 병폐를 지켜보면서 이를 치유하기 위한 것으로서, 개인은 도덕적이고 사회는 비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럴까. 사실 니버는 자본주의 병폐가 구조화된 사회에서 개인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본다. 결국 국가는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과 이들이 어울려져서 만든 '사회의 공의'를 향해서 개인의 욕망을 잠재우는 것이어야만 성립되고 존속되는 것 아닌가. 물론 인간의 이성 자체가 원초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칸트의 주장도 되씹어 볼 필요가 있기는 하다.
세금은 공평하게 부과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행 감세기조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감세기조를 유지하려면 나름대로의 대안 제시가 있어야 한다. 사실 상당수 감세론자들은 소득관련 세제는 내리고 그 대신 소비관련 세제나 재산관련 세제를 인상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소득세나 법인세를 인하할 경우, 대안의 제시가 없다면 재정 적자기조가 유지될 것이고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전직 某 장관의 주장처럼, 소득세와 법인세는 인하를 하고 그 대신 부가가치세율은 2% 인상하자는 것과 같은 감세에 따른 대안과 논리의 제시가 필요하며, 당장 어렵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회복된다면 그 때는 부가가치세 세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야만 그래도 감세론이 타당한 것이다. 물론 부가가치세율이 인상되면 서민경제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것은 재정정책(세율인상분에 대한 보조금 지급)등을 통해서 해결하면 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법인세율이나 소득세율의 인하는 고려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