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당에서 받은 영수증을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부가가치세 세율이 단일 세율이 아니라 복수세율체계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차로 영국을 가기 위해서는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가야 하는데, 이곳 음식점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식당 안에 있는 홀에서 먹으면 19.6%의 세율이 적용되고, 판매대 밖에서 그냥 들고 먹으면 5.5%의 세율이 적용된다. 따라서 음식 주문할 때 종업원이 반드시 물어보는 말이 있다. sur place?(이곳에 앉아서 드실래요?) 아니면 emporter? (가져가서 드실래요?)이다. 왜냐하면 고객의 대답에 따라서 적용되는 부가가치세 세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법상 용어로 구별해 보면, 전자는 음식점 용역거래이고, 후자는 재화의 공급인(판매거래인) 셈이다.
우리 생각은 시간이 좀 남으면 안에서 먹고 시간이 부족하면 서서 먹고 나오면 그만인데, 먹는 장소에 따라서 세율이 다르다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잘도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왜 그럴까? 이곳 사람들은 세제의 간편화가 싫어서 그렇게 세법 규정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식사 습관과 관련이 있다. 이네들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대부분 가정에서 식사를 한다. 음식점에 가서 먹을 것을 사다가 집에서 간단히 데워서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정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세제에 반영됐다고 본다.
본 주제와 관련해서 EU는 좀 더 복잡한 모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부가가치세의 세율 인하와 관련해 프랑스와 독일, 프랑스와 영국, 영국과 독일이 서로의 입장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서 몇년간을 끌고 있다. 각 국의 부가가치세법은 세수입의 확보를 위해서 아주 '세밀하고 그리고 오밀조밀하게' 잘 구성돼 있다. 세율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EU가 출범하면서 EU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하기 위해 역내 거래에 대한 관세의 철폐와 부가가치세의 일치(harmonization)를 위해서 각국의 부가가치세 과세주권을 상당수 EU에게 반납했다.
따라서 각 국가가 나름대로의 필요에 따라 세율을 인하하려면, EU 회원국 전체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동의를 얻지 못하면 EU를 탈퇴하기 전에는 세율 인하가 불가능하도록 EU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노동집약적인 청소용역, 배관용역 등은 5% 세율이 적용될 수 있어서 회원국 자율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조세의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프랑스가 5% 세율을 적용하고, 독일이 16%를 적용한다고 하여, 프랑스의 배관공이 독일에 가서 용역을 제공할 경우가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각 나라가 자국의 경제회복을 위해서 세제를 동원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식당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율의 인하이다.
첫째, 프랑스의 주장이다. 음식에 관한 한, 절대적 경쟁력이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유럽의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최근 금융위기 상황까지 겹치다 보니, 외국 관광객의 음식 수요가 증가되지 않아서, 이를 인하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런데 독일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표면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세율인하는 재정수입의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EU 전체의 재정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 맛이 좋기로 소문난 프랑스가 부가가치세율까지 낮추면 독일 식당고객이 프랑스로 몰려갈 염려가 있을 수도 있다. 특히 프랑스 국경과 맞닿고 있는 독일지역의 경우는 더욱 심할 것이다.
둘째, 영국의 주장이다. 유럽에서 금융위기의 직격탄이 아이슬란드이지만 영국도 만만치 않다. 영국이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행 17.5%의 부가세를 2.5%포인트 인하하고자 하는 경기부양책을 제시하였으나, 이에 프랑스와 독일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유는 경기활성화와 부가가치세율 인하는 그리 상관관계가 맞지 않으니 좀 더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말이 고려이지 실은 반대인 셈이다. 일본이 하는 것은 일단 '모두 밉게' 보이는 우리네 심정과 같을 수도 있다고 본다.
셋째, 독일의 주장이다. EU를 프랑스와 함께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강국이다. 세계 제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승전국(?)인 프랑스에 대해서는 많은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는 나라이다. 몇차례의 거부의사 뒤에 미안했던지, 2009년1월20일 브뤼셀에서 개최된 EU 재정부 장관회의에서 식당의 부가가차세율을 5.5%로 인하하는데 동의를 한 모양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프랑스 식당의 부가가치세율이 인하돼도 독일 고객이 프랑스에까지 가서 식사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주장은 불과 몇달전만 해도 독일이 프랑스의 부가가치세 세율인하를 반대한 이유이었다. 단지 금융위기로 인해서 프랑스 요식업계의 매출이 30%가량 급감하고 있는 다급한 실정을 독일이 들어주고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점은 음식점에서 공급하는 용역에 대해서도 세율이 다를 수도 있다는 세법의 '치밀함'과 아울러 부가가치세 세율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실제 프랑스는 기본세율이 19.6%이고, 감면세율이 5.5%, 낮은세율이 2.1%의 규정이 있다. 지금 자국의 경기가 안 좋으니까 경쟁력이 있는 분야의 부가가치세 세율의 인하를 통해서 경기를 살려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세율 인하를 위해서는 국회 통과는 물론이거니와 EU회원국 전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EU의 식당에 대한 부가가치세 세율인하는 2009년 3월 중에 최종적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식당에 대한 부가가치세율의 인하가 음식업 경기활성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그리고 줄어든 세수를 어떻게 보충하는지, 프랑스의 세율인하에 따라서 인접국가의 음식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관심있게 지켜볼 사항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세제의 근간이 유럽의 부가가치세에서 도입돼서 반면교사의 효과가 있을 것이고, 부가가치세 면세규정의 축소와 복수세율 체계의 도입 등의 주장, 부가가치세 세율인하를 통한 경기 활성화 주장, 부가가치세의 간편화 주장 등 서로 상반된 견해에 대한 좋은 시험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