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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재량적 소득세제 개편과 물가연동제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필요에 따라 수시로 개편되고 있다. 최근 10여년간을 살펴보면, 근로소득세와 관련된 소득공제의 범위와 한도의 개편이 가장 빈번했다. 부수적으로 공제항목의 범위와 적용조건 등도 비교적 자주 개편됐다.

 

소득공제의 한도와 범위, 세율구간 등은 세법 개정에 의하지 않는 한 일정한 금액으로 고정돼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일정금액으로 규정된 조항에 대해 실질가치를 유지해 주는 차원에서 물가에 연동해 해당 금액을 조정해 주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물가연동제 대신 경제정책적 차원 또는 기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재량적으로 소득세제를 개편하고 있다.

 

학계를 중심으로 소득세의 공제수준·한도, 세율구간 등에 대해 물가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위의 항목들을 제때 조정해주지 않으면 실질소득 증가분뿐만 아니라 물가상승분에 대해서도 종전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되므로 소득세의 실질부담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곧 증세로 해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물가에 대응한 자동조절장치, 즉 물가연동제 도입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물가연동제 도입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물가연동제가 제대로 잘 운영된다면 모르지만 운용상의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 재량적 개편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를테면 물가에 연동해 소득공제수준을 조정하는 경우에도 정치적 고려를 통해 추가적으로 과도하게 공제수준과 한도를 확대한다면 좁은 세원을 더욱 좁히는 결과를 초래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연동제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재량적 개편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이 이를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물가연동제는 세부담의 실질가치 유지라는 장점이 있지만 매기마다 기계적인 조정이 이뤄진다. 따라서 환경변화에 다른 임의적 조정이 어려울 수 있다. 제도의 탄력적 운영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재량적 개편은 정책적 필요에 따라 적절히 조정해 준다면 매우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재량이 남용된다면 정반대의 위험 가능성도 크다.

 

현행과 같은 4단계 세율구간의 소득세 체계는 '96년에 확립됐다. '96년의 소득세 과세자 비율은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가 각각 68.1%와 34.1%였다. 2006년도에는 각각 52.6%와 59.7%로 변했다.

 

종합소득세의 과세자 비율이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소득공제 수준을 묶어두는 한편 과표양성화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종합소득세의 소득공제수준을 장기간 동결했던 이유는 자영업자들의 소득 과소보고로 인한 근로소득자와의 세부담의 불공평을 해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면세점을 낮게 유지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근로소득세의 과세자 비율이 크게 낮아진 이유는 소득공제의 과도한 확대에 기인한다. 재량적 개편의 결과 소득공제 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크게 상회하면서 면세자 비율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소득증가율보다 소득공제 증가율이 훨씬 더 컸다는 점만으로는 재량적 소득세제 개편의 적절성을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득세의 과세자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고,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미약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그동안의 재량적 소득세제 개편은 적정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적정수준의 소득세 개편을 논함에 있어 과세자비율과 같은 세원범위의 크고 작음만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소득자의 절반 정도가 면세자라는 것은 지나치게 높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08년말의 소득세법 개정에서는 기본공제액이 1인당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50% 확대됐다. 물가연동제하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대폭적인 조정이다. 필자가 시산해 본 바로는 2008년말의 소득세법에 따라 2009년도 소득세의 세부담은 평균 12.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물가 상승에 따른 세수증가 효과를 중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수준을 크게 초과해 감세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소득세 감세가 단순히 물가효과의 중화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개편은 그동안의 재량적 개편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으며, 아울러 그런 개편이 지속적으로 소득세 세원을 좁혀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금의 재량적 개편체계에 대해 재검토해 볼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재량적 소득세 개편 대신 물가연동제 도입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해 보기를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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