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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평화의 소식을 기다리며

연말이 무척 어수선하다. 경제위기 때문에 모두가 위축돼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들려오는 소식마다 서글프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장14절). 그리스도의 오심이 마침내 이 땅에서 평화를 이룰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분열과 분쟁으로 얼룩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도 한없는 위로를 받는다. 땅에 사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지극히 높은 곳의 일보다 땅의 일에 더 관심이 가는 것 같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과연 하나님이 나를 혹은 우리를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리스도를 보내신 사실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증거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평화가 임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평화라는 말은 헬라어의 '에이레네'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화평, 화친, 조화, 화목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라고 한다. 갈등, 반목, 대립 그리고 분쟁 등의 반대가 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니 우리나라에서 '에이레네'가 가장 필요한 곳은 바로 국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회의원은 특정지역 주민이나 특정 직능의 대표로 뽑힌 존귀한 직책이다. 그 분들은 특정한 집단의 대표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요, 얼굴이다. 나라가 번영하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을 결정하도록 하는 사명이 위임된 막중한 책임의 자리이기도 하다. 대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국민의 어른같은 지위에 있고 그분들의 언행을 본받으려 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분들은 본받을 만 해야 하고 또 본받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야 정상이다. 성인군자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의 평균 정도는 넘는 상식과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해머, 전기톱, 소화기 그리고 소방호수 등으로 기물을 부수고 서로 몸싸움을 하고 막말을 퍼부으면서 어떻게 올바른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은 위기, 진짜 위기가 아닌가? 누구 탓이든간에 평생 모은 재산이 반토막이 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한 하루하루를 넘기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줄이 막혀 멀쩡한 기업이 넘어가는 것을 막아보려고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중소기업가들, 몇년째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이제는 아예 체념해 버린 청년들, 국밥 한그릇 얻어 먹으려고 길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노숙인들. 이런 국민들은 안중에 없단 말인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우며 진지하게 논의를 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기막힌 방안이 나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싸우고 때려 부수면서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외국 주요 언론들이 이 기괴한 사건을 사진과 비아냥으로 대서특필하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국제망신, 국가신인도 추락, 국가브랜드의 가치 훼손 등이 걱정된다. 특히 국제 인재시장에서 한국인의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어떤 민주주의를 배울지가 훨씬 더 걱정이 된다.

 

어떤 사안이든지 이견이 없을 수 없고 이해가 엇갈릴 수 있는 경우들은 허다하다. 그러나 그러한 이견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합의 또는 결정에 이르게 하는 것이 정치적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은 일정한 규칙과 절차에 따라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뤄진 결정에 대해서는 모두가 승복해야 한다.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선수들은 경고를 받고 계속 반칙을 하는 경우 퇴장시키는 것은 경기의 공정한 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우리 국회에도 이러한 제도가 도입돼야 할 것 같다. 꼭 제도로 도입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때까지 잘 기억해 둬야 한다. 그리고 기물 파손 등 국가 재산에 손해를 입힌 행위에 대해서는 응분의 보상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혈세를 한푼이라도 아껴서 낭비가 없도록 감시해야 할 책임은 국회에 있지 않은가?

 

'에이레네'는 용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용서는 속죄물을 필요로 한다. 성탄이 평화를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속죄의 희생양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화해에 앞서서 정의의 요구가 충족돼야 한다는 것이다. 힘없는 일반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려면 국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곳에서 법질서가 엄정하게 세워져야 한다. 참된 평화는 구호로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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