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읽었던 링컨의 일화가 생각난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전황은 매우 불리해서 전선에서는 연일 나쁜 소식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의견들이 분분하게 된다. 참모들, 관리들, 그리고 주위의 친구들의 온갖 건의와 제안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들은 대통령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링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한 농부가 낯선 길을 가고 있었소. 그런데 마침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내리면서 상황은 더 어렵게 되었지요. 그러나 무서운 천둥소리 사이로 번쩍거리는 번갯불은 길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농부는 진흙탕 속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천둥소리는 줄여주시고 번개를 더 많이 보내 주소서! (Lord, more light but less noise!)'"
위기감이 매우 고조돼 있다. 정말 어려운 때다. 이런 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는 한줄기 작은 빛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그러나 링컨의 때처럼 상황이 어려워지고 불안해지면 빛보다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더 풍성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그래서 잠잠히 있는 것이 부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론을 쓰라는 메일이 왔다. 조금 망설였으나 내 이야기가 높은 사람들 들으라는 것도 아니고 천둥소리처럼 목소리가 큰 것도 아니니 몇마디 지껄인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세제개혁관련 이슈들 중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법인세율의 인하, 종합부동산세의 완화 그리고 민주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부가가치세율의 인하 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집권당이 처음부터 맨앞에 내놓고 주장해 왔던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의 개혁은 크게 후퇴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느닷없이 부가가치세의 인하론이 등장해서 힘을 받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조세정책을 책임졌던 자칭 조세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당에서 부가가치세율의 큰 폭 인하를 주장하고 나온다는 사실은 정말로 믿기지 않는 현상이다.
우선 부가가치세는 건드리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재정의 효율성과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복지재정의 확대 등을 생각하면 부가가치세의 기능은 앞으로 계속 강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얼마나 더 악화될지 알기 어려운 실물경제 상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재정규모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효율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분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가가치세보다 나은 세목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합부동산세의 개혁론은 치열한 눈치 보기로 탄력을 잃고 표류하는 상황인 것 같다. 지금의 위기가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종합부동산세의 개혁이 부동산시장의 침체를 완화하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이 제도의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종합부동산세가 부동산 경기의 과열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효과가 없었던 것처럼 이것을 완화하거나 없앤다고 해서 당장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물론 심리적으로 부동산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법인기업이 부담하는 종합부동산세의 완화는 그동안 종부세가 초래했던 기업 투자 위축이나 원가상승 압박 등을 해소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것이 원칙에서 매우 벗어난 이상한 제도일 뿐 아니라 우리의 경제와 사회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청산돼야 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법인세율의 인하를 뒤로 미루겠다는 집권당의 주장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다. 특히 그것을 통해서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서 발권력을 동원해서 금융기관을 지원한다거나 펀드 가입자들을 위해서 세금 감면혜택을 준다고 주장하면서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서는 꼭 세금을 더 거둬야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된 것처럼 법인세율을 인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조세경쟁 때문이다. 선진국이나 우리의 주변 국가들이 매우 과감한 법인세율 인하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는데 대해 우리는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왔기 때문에 법인세율 인하는 그 폭뿐만 아니라 시기를 앞당기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외국자본을 끌어오지는 못해도 국내 기업들이 외국으로 밀려나가는 일을 가능한 한 줄일 필요가 있다. 중국 같은 나라에서 상처를 입고 오갈 데가 없어진 우리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여건도 마련돼야 한다. 지금처럼 경제가 침체돼 가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법인세율 인하는 세수 손실이 별로 크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세율이 높아도 나쁜 실적 때문에 세수가 별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 의사결정에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으로의 세후 순익 증가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대중의 인기에 매달리지 말고 원칙에 따른 바른 정책을 꿋꿋이 밀고 나감으로써 나라를 건강하게 지켜야 역사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