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과연 당국이 위기시에 실제로 투입할 '실탄'을 충분히 갖고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시장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적극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외환보유액은 갈수록 줄어들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위기가 확산됐을 경우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외환보유액 전체가 위기시에 투입할 수 있는 '가용 외환'이라면서 실탄은 충분히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 외환보유액 갈수록 줄어
9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2천396억 7천만 달러로 전달에 비해 35억 3천만 달러가 감소했다. 올들어 줄어든 규모가 225억 5천만달러에 이른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3월에 2천642억 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했으나 그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월별로는 ▲4월 2천605억 달러 ▲5월 2천582억 달러 ▲6월 2천581억 달러 ▲7월 2천475억 달러 ▲8월 2천432억달러 등이었다.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것은 정부가 원.달러 환율의 상승을 막기 위해 시장에서 보유 달러로 원화를 사들이는 시장개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에는 국내 달러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스와프시장 개입을 통해 달러를 공급하고 있는 것도 외환보유액 감소의 요인에 해당된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이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당정협의에서 "앞으로 외환시장에 필요하면 필요한 만큼의 자금을 투입해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도 "필요하다면 외환 현물시장에도 외환보유액을 통해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앞서 외국환평형기금 100억달러를 스와프시장에 공급, 달러유동성 부족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 가용 외환보유액 170억불? 800억불?
정부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외환은 많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선 유동외채를 기준으로 하면 가용 외환이 거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유동외채는 단기외채에다 1년이내 만기가 오는 장기외채를 더한 것으로 외환보유액이 유동외채에 비해 적어지면 심리적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6월말 현재 유동외채는 2천223억 달러로 9월말 외환보유액과의 차이가 170억 달러에 불과하다.
외채 중 상환부담이 있는 금액을 기준으로 가용 외환을 추정하는 방식도 제기됐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전체 외채 중 상환부담이 있는 규모는 외국계은행 국내지점의 본점 차입, 환헤지용 선물환 등을 제외한 약 1천600억 달러로 현재 외환보유액을 기준으로 약 800억달러가 가용외환"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이 같은 분석은 모두 적정 외환보유액을 추정하는 논리들로 '가용'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한은 국제국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로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하는 주요국의 외환보유액은 '외화자산 중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에서 즉시 유동화가 가능한 부분"이라며 "정부가 발표하는 외환보유액 자체가 모두 가용금액"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에는 각국의 보유액 산정 기준이 달라 실제 장부액과 가용액의 차이가 있었지만 현재는 외환보유액 전액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실탄'이라는 것이다.
표한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용이라는 개념보다는 적정 금액이 얼마냐가 더 중요하다"며 "보유액이 많이 쌓여 비용 문제가 발생하면서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한 논란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 기준들이 있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외환보유액 사용 논란
글로벌 신용경색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환보유액 규모가 세계 6위로 적지 않은 수준이고 9월중 감소액도 주요 외환보유국들에 비해 작지만 올해 들어 6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은 걱정스럽다는 지적이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환율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전제에서 그 때까지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며 "외환보유액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당국이 달러부족 사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면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고 위기를 외면하면 더 큰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원 경제수석도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외환보유액은 쌓아놓기만 하려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너무 쓴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