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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7. (금)

[시론]승용차 5부제, 과연 효율적인가?

요즘 웬만한 공공기관에서는 승용차를 대상으로 요일별 5부제를 시행하고 있다. 얼마전부터는 유가의 고공행진에 에 따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승용차 홀짝제를 실시하는 기관도 상당히 많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자동차 번호 끝자리 숫자를 기준으로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날짜나 요일을 지정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당시에는 자동차 보급대수가 많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도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출퇴근시와 주말에는 심심찮게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지곤 했다. 자동차를 이용해 시내를 통행해야 하는 경우 약속시간에 늦어 낭패를 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올림픽 기간 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올림픽이라는 국제적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할 것이 우려돼 등록번호의 홀수·짝수를 기준으로 강제적으로 일반승용차 등의 통행을 제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90년대에 접어들어서 승용차 홀짝제는 10부제로 변형돼 실시됐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공공기관에서는 강제적으로 시행되고 민간에 대해서는 주로 권장사항이었다. 90년대의 10부제는 주로 교통혼잡 완화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10부제가 요일별 승용차 5부제로 변형되었다. 주된 목적은 여전히 교통량 억제에 있었다.

 

최근에 실시되고 있는 승용차 홀짝제는 이전에 실시됐던 10부제 또는 5부제와는 성격이 다소 상이하다. 국제유가가 한 때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면서 치솟는 물가와 함께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등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으로 승용차 홀짝제가 시행됐는 바 주된 목적은 유류소비 억제에 있다. 이를 통해 에너지 수입 감소를 통한 국제수지 개선을 도모한다고 할 수 있다.

 

승용차 부제 또는 홀짝제 운행 허용제도는 주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유가가 100달러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더이상의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유가가 200달러 수준까지 인상됐다면 아마도 승용차홀짝제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적용범위가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승용차 부제 및 홀짝제 등은 시행의 강제성으로 인해 나름대로의 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자원배분의 효율성이나 사회후생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성과를 논하기 어렵거나 또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식적으로는 강제운휴를 통해 에너지 절감 등의 효과를 거뒀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한 후생의 감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만약 후생의 감소분이 에너지 소비 절감을 통한 비용절감분보다 작다면 부제 또는 홀짝제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제가 적용돼 대상자가 강제적으로 배분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원배분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의 판단으로 그 가능성은 99% 이상일 것으로 생각된다. 논리는 간단하다. 부제 또는 홀짝제의 경우 반드시 승용차를 운행해야만 하는 응급·긴급상황에 있는 경우라면 승용차 운행에 따른 효용(후생)은 긴급성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만약 부제로 인해 이런 사람들이 승용차 운행을 하지 못해 불편을 겪게 된다면 희생된 후생수준으로 평가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매우 높다. 이에 비해 사회·경제적 편익은 운행 억제로부터 얻은 기름값 절감분에 불과하다. 이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빚어진다.

 

그러므로 부제 또는 홀짝제는 행정적으로 강제하기 쉬운 수단임에는 분명하지만 잠재된 비효율성은 매우 크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이 적절한가?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누가 운행하고 누가 쉴 것인가를 정부가 강제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승용차 운전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세율 조정을 통해 유가를 조정하면 된다. 소비 억제가 필요하면 세율인상을 통해 가격을 인상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승용차 운행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름값에 부담을 느껴 자연스럽게 운행을 제한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돈 없으면 승용차도 못 타냐'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기름은 공공재가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싼값으로 기름을 공급해 저소득층이 자유롭게 승용차를 운행하게 해 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소득이 낮아 생활고에 시달린다면 소득보전정책 등을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휘발유나 경유를 싸게 공급해 주는 것은 근본대책이 되지 못한다. 저소득층의 경우라도 승용차를 운행할지 말지의 여부는 스스로가 선택하도록 해야 하며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승용차 부제는 마치 획일적인 평등권에 기초해 교통량 저감 또는 에너지 소비 절약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원 배분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보다 효율적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조세정책을 통한 가격정책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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