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대기업들이 투자를 머뭇거리며 경제회생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여권 일각의 비판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전경련은 24일 긴급 보도자료를 통해 600대 기업의 상반기 시설투자가 총 45조8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8% 증가했고, 특히 상위 30대 그룹 소속 기업의 시설투자는 29조1천248억원으로 20.4%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600대 기업의 올해 총 투자계획은 100조2천79억원으로 지난해 실적치인 79조5천94억에 비해 2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하반기에도 투자 확충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강조했다.
재계가 이처럼 대기업의 '투자 의지'를 강조하고 나선 것은 지난 18일 한국은행이 국민소득 통계자료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상반기 설비.건설.무형고정투자를 합한 총고정자본의 전년 동기 대비 실질증가율이 0.5%로 거의 '제로'였다고 밝힌 이후 정부 여당 일각에서 재계에 대한 비판론이 공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여론의 역풍을 감수하면서 8.15특별사면을 통해 기업인 사면조치를 단행했는데도 정작 대기업들은 돈만 쌓아놓고 투자는 안 하면서 대우조선해양 인수 경쟁 등 인수합병(M&A) 경쟁에만 골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여권 내 비판론의 핵심이다.
한은의 발표가 있은 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지난 21일 강연을 통해 "지금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돼 투자를 안 한다고 하는데 재벌들은 몇십 조 원씩 쌓아놓고도 투자를 안 한다"며 "8.15사면은 경제인들이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투자를 좀 하라는 의미였는데 말로만 고맙다고 하지 말고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차명진 대변인도 논평에서 "이번에 경제살리기라는 이유로 욕 들어가면서 특별사면도 해줬는데,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에만 급급한 기업인들이 꽤 있다"고 노골적으로 재계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몇몇 대기업이 여권 내 기류 파악에 나서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전경련도 이날 통계자료를 통해 "대기업의 투자노력이 미흡하다"는 주장은 오해라며 해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전경련은 우선 한은의 국민소득계정에 있어서의 총투자 추계와 전경련의 시설투자 실사는 대상과 방법에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한은의 총투자 개념에는 중소기업을 비롯한 모든 부문의 투자가 포함돼 있는 데 비해 전경련의 시설투자조사는 상위 600대 기업의 건물, 구축물, 기계장치, 차량 및 운반장비 등 유형고정자본투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국민소득계정상의 총투자는 물가상승분을 감안한 불변가격으로 산정된 데 비해 전경련의 시설투자조사는 명목투자금액의 증가분을 단순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괴리가 있다는 것이 전경련 측 해명이다.
특히 전경련 측은 "올해 상반기 매우 부진했던 건설업종과 중소기업 등 두 부문을 포함한 총투자 추계를 근거로 '대기업이 투자에 무관심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은 조사에서 상반기 총투자가 저조하게 나타난 것은 전체 투자의 약 6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계가 크게 부진했고, 내수 중소기업도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것이 원인이 됐던 것"이라며 "그런데도 투자부진의 원인이 대기업에 있다는 오해가 생기고 있고 기업인들에 대한 일반의 여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 곤혹스럽다"고 말했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