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조준웅 특별검사에 의해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항소심 재판이 다음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심 재판부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등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및 면소 판결을 한 만큼 항소심에서는 여러 증인이 추가되기보다는 기존 증거의 판단을 놓고 조 특검팀과 변호인 사이에 첨예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서기석 부장판사)는 특검법이 규정한 2개월의 재판 기한을 가급적 지키기 위해 9월 중순께에는 심리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신속히 재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 항소심 쟁점은 = 1심에서 이 전 회장에게 무죄 판결한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혐의에서는 CB발행 당시의 배정 방식이 핵심이다.
1심 재판부는 주주배정 방식 하에서 에버랜드 주주들이 손해를 용인하고 실권했고 에버랜드에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특검은 제3자 배정방식으로 CB발행이 이뤄졌고 이재용씨 남매가 당시 형성된 에버랜드 주가보다 현저히 낮은 7천700원에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에버랜드에 970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검은 항소심에서 에버랜드 주주들에게 CB발행 통지 절차가 없었음을 근거로 제3자 배정방식으로 CB가 발행됐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에버랜드의 법인 및 개인주주 가운데 최대주주였던 중앙일보에만 문서로 된 청약안내문 등이 남아있는데 문서간 내용에 일부 차이가 있어 통지 서면이 사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배정방식이 무엇이었느냐와 함께 CB발행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는지 여부에 대한 법리논쟁도 항소심에서 재연될 예정이다.
삼성SDS BW 저가발행 혐의의 경우 당시 비상장사인 삼성SDS의 적정 주가가 얼마였느냐가 여전히 주된 쟁점이다.
특검은 적정 주가가 5만5천 원이라는 기존 주장을 유지하면서 5만5천 원이 아니더라도 저가발행으로 인한 배임액이 50억 원을 넘는다면서 항소했다.
1심 재판부는 자체 계산법에 따라 배임액이 50억 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50억 원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의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고 판단해 면소판결 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필요할 경우 적정주가에 대해 감정을 할 수도 있다고 밝혔지만 재판에 주어진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감정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이 전 회장 '운명' 바뀔까 = 이 전 회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의 최대 한도인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에버랜드 CB 편법증여나 삼성SDS BW 저가발행 혐의 중 일부라도 유죄 판결을 받으면 실형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특검이나 변호인 모두 두 혐의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다툼이 없이 법리적용 및 해석에서 '평행선' 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라서 사실상 항소심 재판부가 어느 쪽에서 설득력을 찾느냐에 따라 이 전 회장의 '운명'이 달라지는 셈이다.
앞서 CB발행으로 에버랜드 전ㆍ현직 대표이사들이 기소돼 1ㆍ2심에서 차례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범으로 기소된 이 전 회장이 1심에서처럼 에버랜드 CB 사건에서 무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도 관심거리다.
재판부는 재판 시작에 앞서 CB발행 및 배임죄의 성립과 관련한 판례와 논문 등 관련 자료를 모으는데 협조해줄 것을 특검과 변호인 측에 요청했다.
1심에서는 공판준비기일을 5차례나 열어 쟁점을 정리한 뒤 공판을 시작했지만 재판부는 1심 선고 후 두 달 이내에 항소심 선고를 하도록 한 특검법의 규정을 존중해 공판준비기일 없이 25일부터 본 재판을 시작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필요하면 일주일에 두 차례씩 공판을 열어 9월20일 안팎까지는 심리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9월 말께에는 이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연합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