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과 관련한 전향적인 법원 판결이 최근 내려져 과세당국과 납세자는 물론, 각종 과세불복위원회 등의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 2부(부장판사·한승)는 18일 영농조합법인 설립 당시 명의를 빌려준 이 某 씨 등 주주 4명이 서울 동작세무서 등 관할세무서 4곳을 상대로 낸 증여세 소송에서 원 부과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영농조합법인 설립을 위해서는 舊농업·농촌기본법에서 지정한 조합원 5인 이상이 참여해야 하며, 지난 2002년 실제 법인설립자인 박 某씨는 이같은 요건에 부합하기 위해 이 씨 등 4명의 명의를 빌렸다.
박 씨는 영농법인 지분 가운데 49%를 본인의 이름으로, 나머지 51%는 4명에게 명의신탁하는 방법을 통해 총 210억원을 출자한 후 국세청에 주식변동상황명세서를 제출했다.
국세청은 그러나, 07년 2월 해당 영농법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실제법인설립자인 박 씨가 조세회피 목적으로 명의신탁을 통해 법인을 설립했다고 보아, 명의를 빌려준 이 씨 등 4명에게 증여세 명목으로 총 72억원을 부과했다.
국세청은 이와관련 “법인 설립자인 박 씨가 양도소득세법상 과세비율 36%가 아닌 법인세율 27%를 적용받는 점을 악용, 양도·취득세 등 9억원을 포탈한 만큼 명의신탁 지분은 증여재산에 해당한다”고 원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반면, 원고인 이 씨 등 4명은 “법인설립자인 박 씨가 명의신탁을 통해 취득한 지분을 처분하지 않는 등 여전히 현 상태에 있다”며, “성실히 납세의무를 지켰는데도 명의신탁자에게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이다”고 과세의 부당성을 강변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舊농업·농촌기본법에서는 영농조합법인의 설립요건으로 조합원 5명 이상을 강제하고 있으며, 박 씨는 이같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원고들 명의로 출자한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또한 “법인설립 후 현재까지 조세가 체납되거나 배당이 실시된 적이 없다”며, “원고들 명의의 취득 지분 역시 양도된 바가 없는 점 등을 미뤄, 조세회피 목적이 없다고 보이는 만큼 증여세 부과를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명의신탁자와 국세청과의 조세쟁송이 끊이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단순히 ‘조세회피 혐의’만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잘못임을 지적한 이번 행정법원 판결로 인해 국세청 및 조세심판원의 심사·심판청구 심리절차가 적지 않게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