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씨앗 한 톨 정자 마루 아래에서 싹은 낸 날 이후
한 서너 해 지났든가?
손가락 마디에서 부채를 들고 여름을 쓸던 나무를
몇 번 베어 내다가 그것도 생명이라고 내버려 두었더니
허벅지보다 굵은 둥치에 정자 지붕을 온통 덮고 있다.
제대로 키운 적도 없는 나무가
한 여름의 그늘을 드리워 주는 것이 새삼 미안스런 일이나
우리가 키운 사람도 한결 같지 않으니
나무가 좁은 마당을 가득 채우는 불편함과 같은 것일까
가을엔 넓은 잎으로 마당을 덮고 겨울엔 전봇대처럼
서서 따스한 빛을 막지 않으며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막는 존재로만 남을까
예전엔 아이를 낳으면 오동나무 한 그루 심어서
시집가는 날 가구를 만들어 준다는데
나무는 정자에 쓸쓸한 바람을 불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