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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제언]조세정의의 실종을 개탄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약사항 실행의 일환으로 고가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완화방안을 발표했다.

 

부동산시장 경색의 원인이 과다한 양도소득세 때문이고,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 무겁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새 정부가 고급주택을 지니고 사는 부유층의 세금경감책을 제일 먼저 내놓는 것을 보고 처음부터 순서가 바뀐 게 아닌가 모두들 의아해하고 있다.

 

게다가 감면대상이 되는 고가주택은 특정지역에 편재돼 있는 것이 현실이고, 공교롭게도 이러한 정책 입안에 직접 참여하고 있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수혜자가 된다는 점에서 의문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고가주택에 대한 초과부분 과세규정은 1세대1주택 비과세규정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해 우리 세법이 초창기부터 채택해온 제도로서 국민 모두가 수긍하는 양도소득세의 핵심규정이다.

 

아무 탈없이 수십년간 운영해온 이 좋은 제도를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서둘러 꺼내든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감세공약에 대한 기대심리로 강남의 집값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보며 50%가 넘는 무주택자들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했다.

 

'아차! 또 속았구나'하는 섬 뜩한 생각이 섬광처럼 그들의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양도소득세의 완화가 주택시장의 활성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일반 이론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 편재돼 있는 고가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의 경감조치가 전체 주택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착각이거나 속임수에 불과하다.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집값은 지난 5년동안 3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올랐고, 이러한 상승률은 고가주택에서 더욱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집값이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되고, 보유관련 세금에 부담을 느낄 경우 집주인은 집을 팔아 차익을 챙기고 세부담이 적은 곳으로 옮겨 보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시장심리에 이끌려 그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세금을 내고 주거를 옮겼으므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이사갈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또한 갑자기 수십억원의 재산가가 된 고가주택 소유자들은 이젠 나도 부자라는 상류의식에 도취돼 부촌으로 특화된 그 지역의 주류로 남아서 오래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사갈 의사가 없는 부자들의 주택에 대해 양도소득세까지 경감해 줄 경우 주택 가격만 올려놓을 뿐 거래는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강남주택의 상승이 강북주택의 하락으로 이어진 경험에 비춰볼 때, 고가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의 경감조치는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서민주택 가격의 폭락과 대출채권의 부실화로 연결돼 한국판 서브프라임론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하고, 세금은 능력에 따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조세사상의 본질이며 조세정의의 핵심이다.

 

부유층의 세금경감을 위해 국민의 긍정적 호응속에 수십년간 시행해 온 양도소득세의 핵심규정에 칼을 대는 행위는 새 정권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실책이다.

 

집값이 올라서 차익이 생겼으면 당시의 세법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이 순리인데도 자기들은 집값상승을 부추긴 일도 없고 투기를 한 일도 없으니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이들은 경색된 부동산 시장이 풀리게 하려면 자기들이 집을 팔고 떠날 때까지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자기들은 집값폭등을 원한 바도 없고, 부추긴 일도 없었는데 집값이 올랐다면 이는 바로 불로소득을 얻었다는 말이니, 남보다도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근대적 시민사회가 납세자주권의 기초 위에서 탄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곡설과 졸책으로 조세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작금의 작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치솟는 전세를 못 이겨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산 서민들이 겪고 있는 악몽같은 고통을 당국은 아는가 모르는가.

 

눈만 뜨면 올라가는 이자와 피를 말리는 연체 압류의 공포 속에서도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새 정부에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실정이 이러한데도 제일 먼저 꺼내든 카드가 고작 부유층의 양도소득세 경감이라 하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당국의 서민주택 정책은 언제나 미봉책에 그친 탓으로 실패를 거듭해 왔다.

 

엊그제 내놓은 이른바 지분형아파트라는 것은 분양받은 자와 건축주가 51:49의 비율로 공유하되, 분양받은 자가 전체를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임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주의 공유지분은 독립한 소유권인데 헌법에 보장된 타인의 소유권을 어떻게 분양받은 자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가 있단 말인가.

 

또한 건축주는 투자액 중 자기지분에 해당하는 49%의 자금을 회수할 수가 없고, 임대료수입도 없는데 어느 누가 이러한 사업에 투자를 하려 하겠는가.

 

싸구려 과자조각 몇개로 우는 아이 달래보려는 생각은 이제 그만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정부는 좀더 도덕적이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나라를 이끌어갈 부유층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조세정의를 지키려는 당국의 의지가 혼연히 결합될 때 올바른 시민사회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믿어 마지 않는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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