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상공업계와 세정가에서는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의 '세무행정에 대한 주문'이 화제가 됐다.
그동안 국세청 수장에게 자신들의 애로사항 등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돼 왔던 기업 CEO들이 이날 한상률 국세청장과의 간담회에서는 프리(Free)하게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기존 '50분 청장 특강, 10분 기업인 질문'방식이 이날은 '120분간 상호 질의응답' 방식으로 바뀐 것도 기업인들의 말문을 열게 만든 한 요인이었다.
간담회 참석자는 손경식 대한상의회장을 비롯해 백남홍 을지전기 대표이사, 김상열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신박제 NXP반도체 회장, 이종희 대한항공 총괄사장, 임도수 안산상의회장, 이용구 대림산업 회장, 이정대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중량감 있는 대한상의 회장단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쏟아낸 말'들은 상공업계 전체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A업체 CEO는 간담회가 끝난 후 "오늘 국세청장과의 간담회는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보다 더 센 것 같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먼저 손경식 회장은 "국세청이 일자리 창출 기업과 지방장기성실사업자에 대해 세무조사 면제를 검토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운을 뗐다.
한 지역상의회장은 "소규모 성실사업자에 대한 조사제외 기준을 좀 더 완화해 달라"고 세무조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주문을 했다.
또 "조사결과 성실기업으로 판명되면 조사주기를 연장해 달라"는 건의도 덧붙였다.
다른 지역상의회장은 "일자리 창출 기업과 지방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 대상과 기준을 더 확대해 달라"며 한발 더 나아갔다.
이날 기업 CEO들의 주문사항은 대부분 '세무조사'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기업인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부담일 수밖에 없는 세무조사가 가능하면 덜 실시되고, 어쩌다 한번 받았으면…하는 바람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CEO들 중엔 세무조사 외에도 국세청의 과도한 세무업무 부담을 덜어달라는 요구도 서슴없이 했다.
대한상의내 한 위원장은 "국세청이 기업들에게 너무 과도한 자료제출 요구를 한다"고 꼬집었고, 대한상의 한 임원은 뜨거운 감자인 "접대비 실명제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요즘 몇 명이 호텔가서 밥 먹으면 대부분 50만원을 넘는다"는 하소연도 덧붙였다.
기업 CEO들의 현실적인 주문이 쏟아지자 간담회에 배석한 국세청 국장들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주문이 쏟아질 때마다 한 국세청장이 바로 그 자리에서 시정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날 기업 CEO들의 세무행정에 대한 주문은 하나같이 기업경영 현장에서 묻어나온 것들이었다.
결국 이날 간담회에서 국세청장과 기업 CEO들은 각자의 요구사항을 꺼내놓고 서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자고 의지를 다졌던 셈이다.
한 참석자는 "국세청장이 인쇄물로 만들어진 '국세행정방향'을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모습을 보인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이날 간담회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이런 간담회를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과도 개최할 예정이다.
한상률 국세청장이 이끄는 국세청이 이런 초심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업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한다면 "'친기업적 세정환경'이나 '섬기는 세정'이라는 모토가 헛구호가 아니었구나"라는 공감이 기업인 사이에서 확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