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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7.05. (토)

납세자에게 진정한 권리구제절차는 있는가?

객관적 심사결정으로 국민신뢰 얻어야

본인은 세무사를 하다 보니까, 심심찮게 고향에서 지인들로부터 심사청구나 심판청구를 해야 하는 사건들이 올라온다.

 

한번은 '취득시기'가 쟁점인 양도소득세 불복사건이 있었다.

 

'세무인명록'을 넘겨보니, 마침 고교 선배가 해당 과세관청의 서장으로 있었다.

 

그 선배는 본인과 동향인데다가 세무서장이 돼서 고향에 내려가 있는 터이니 '누구보다도 관내 실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어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관련 예규와 판례까지 붙여서 '경정청구'를 냈다.

 

그런데 '아는 ×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그 서장은 처음에는 '세액이 커서 직원이 부담스러워 한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자기도 덩달아 반대논리를 펴면서 서장이 됐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본인더러 '×××씨가 근무할 때는 어떠했다고 그러더라!'는 등의 현안과 관련없는 비아냥거림까지 해가면서, 내부 과장들로 구성된 책임회피성 '조사쟁점 심의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열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기각시켜 버렸다.(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치욕과 울분은 사그라지지를 않는다.)

 

그 이후에 이 사건을 놓고 '국세청에 심사청구를 할 것인가? 아니면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망설였다.

 

국세청에 심사청구를 내자니, 과거에 '국세청의 심사과'를 일컬어 '기각과'라고 할 정도로 기각만을 일삼아 오던 곳이 아닌가?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내자니, 국세심판원은 처리기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기관이라서,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일 것 아닌가?

 

본인은 고민고민하던 중, '국세청의 심사과'에 아는 사무관이 있기에, 그 사람에게 "요즈음도 본청 심사과에서는 심사청구가 들어오면 다 기각시키고 있느냐?"고 물어 봤더니 "요즈음은 국세불복심의위원회에 외부위원들이 있어서, 거의 객관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한다.

 

본인이 청구서를 내려고 하는 사건은 '국세청의 선결정례'가 있는 사건으로서, 과거와 달리 '요즈음은 국세청에서도 객관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심사청구를 내기로 결심했다,

 

심사청구를 내고 나서, 담당 사무관을 몇차례 만나서 사건의 정황을 자세히 설명했고, 담당 과장과 국장도 만나서 인용해 줘야하는 당위성까지 설명했다.

 

그러나 담당 사무관은 처음부터 '전례로 봐서 어렵다'는 식의 견해를 내놓았고, 담당 과장과 국장은 청구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봐야 안다'고 했다.

 

결국 국세불복심의위원회의 결정은 '기각'이었다.

 

본인은 심판청구를 내지 않고, 심사청구를 했던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되었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누구든지 그 사건의 청구취지와 결정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때 참여했던 위원들은 무엇을 심의했기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놨는지 모르겠다.

 

외부의원들은 말만 거창하게 '변호사다' '공인회계사다' '지방청장 출신이다' 라고 했지, 알고 보니 '청맹과니'들이다.

 

그들은 내부위원인 국장들의 반대논리에 대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가, 장내 분위기에 편승해서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 분명하다.

 

양도소득세를 과세함에 있어서 양도자에게 양도시기는 취득자에게는 취득시기가 되기 때문에 취득시기와 양도시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양도소득세를 과세할 때는 '매매대금이 거의 다 지급됐으면, 그 때를 양도시기로 봐야 한다'고 결정을 해놓고는 납세자가 보유기간을 기산할 때는 '매매대금이 거의 다 지급됐더라도, 그 때를 취득시기로 봐서는 안된다'는 상호 모순된 결정을 내놓은 것이다.(한마디로 지나가는 개가 다 웃을 소리다.)

 

심의위원회에 '외부위원을 영입한다' '심리자료 사전열람제다' '위원 풀(Pool)제를 시행한다' 등등의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국장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고 있는데,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나중에 이 사건의 진행을 맡았던 사람들은 '행정소송에 가면 꼭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했고, 본인도 청구인에게 "행정소송을 해보라"고 권유했지만 청구인은 "작은 지역사회에서 계속 사업을 해야 하는 입장인데 세무서를 상대로 해서 싸운다는 것은 사업에 악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더이상의 불복을 포기하고 말았다.

 

'억울하게 과세당하지 않은 사람이 조세불복을 하겠는가?'

 

과세관청이 모든 면에서 약자인 납세자의 불복을 일종의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납세자와 맞서서 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억울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문제의 과세처분을 검토해 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본다.

 

재정경제부 소속의 국세심판원은 '75년도에 처음 발족됐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똑같은 기능을 하는 '국세청의 심사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 선배들은 바보라서 필요없는 예산까지 낭비해 가면서 제3의 재결청이라고 할 수 있는 국세심판원을 만들었겠는가?

 

즉 국세청이 재결청으로서 행정심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산물(産物)인 것이다.

 

전에는 납세자가 심사청구를 하고 나서 필수적 절차인 심판청구를 거친 다음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했는데, 지금은 심사청구나 심판청구 중 어느 하나를 거친 다음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심사청구를 선택한 납세자에는 심판청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얼마 전에 본인은 납세자로부터 조세불복사건을 의뢰받아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국세심판원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과세관청에서는 심판청구를 진달(進達)하는데 7일이면 될 것을 1개월 이상 끌었지만, 국세심판원에서는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줬고, 무엇보다도 사건을 심도 있게 분석한 뒤에 객관적인 결론을 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부터 '국세심판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이론이 종종 대두되고 있으나, 심사청구제도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정작 폐지되어야 할 조직은 '국세청의 심사과'인 것이다. (경찰청이 당당하게 수사권의 독립을 주장하려면, 먼저 국민의 신뢰부터 얻어야 하는 것과 같다.)

 

종전과 달리 국세청에서는 심사청구 사건의 심리를 사무관들이 담당하게 함으로써, 국세심판원의 심리 담당자들과 위상(位相)을 동등하게 했으면, 높아진 위상에 걸맞는 그리고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심사결정을 내놔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각의 논리만을 내세운다면 '제살 깎아 먹기 식'으로 국세청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고, 하나씩 국민의 원성이 쌓여갈 것은 물론이요, 종당에는 국민의 지지마저 잃고 말 것이다.

 

심사청구제도가 납세자의 진정한 권리구제절차로서 정착되려면, 심의위원회의 위원들은 내부위원을 배제한 전문성을 갖춘 외부위원들로만 구성돼야 하고, 연임이 없는 철저한 임기제를 실시해야 한다.

 

일찍이 세무공무원들은 국세청에서 요직인 감사(감찰포함), 심사, 조사를 일컬어서, 소위 '3사'라고 해왔다.

 

예외없이 역대 청장들은 '개혁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 '3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개혁이라는 말 자체는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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