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말 2007년도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기국회에 제출되는 세제개편안은 매우 광범위하여 보도자료만 해도 분량이 100쪽을 넘을 정도로 소득·소비·재산과세 전반에 걸쳐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 종합소득세의 과세표준구간 조정에 대한 개편이 가장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현행 세법에 의하면 종합소득세의 세율구간은 1천만원, 4천만, 8천만원을 경계로 4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번 개편에서는 세율구간 구분금액이 1천200만원, 4천600만원, 8천800만원으로 상향조정되었다. 현행 체계는 '96년에 확립되었기 때문에 금번 개정안이 확정돼 내년부터 적용되면 12년만에 개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율구간을 조정하는 개정이유는 근로자, 자영사업자 등 중산·서민층 세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근로소득세와 사업소득세의 경우 면세자 또는 과세미달자가 전체의 약 절반 정도이고 이들중 상당수가 저소득층이라는 점, 그리고 세율구간의 조정이 면세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부가 제시한 개정이유는 옹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 및 실질소득이 대폭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 동안 세율구간이 그대로 묶여 있었던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개선되지 않다가 늦게나마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금번의 세율구간 조정에 대해 결론적으로 먼저 평가를 내리라면 긍정적인 면과 아쉬운 점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세율구간을 동결해 옴에 따라 야기됐던 물가세 논란이 완화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물가세 우려를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하고 문제의 본질을 미래 시점으로 이연시켰을 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나라 소득세 체계하에서 각종 소득공제 세율구간 등은 정책으로 공제한도나 적용범위(구간)이 미리 정해져 있다. 세법개정을 통해 관련 규정을 고치지 않는 한, 정액의 공제한도와 세율구간의 범위는 지속된다.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세부담 측면에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물가상승 또는 소득증가에 대응하여 수시로 공제수준이나 세율구간을 조정해 주지 않으면 점차 세부담 증가속도가 더 빨라져 중·장기적으로 실효세 부담률을 크게 상승시키게 된다. 매년 근로소득세 세수가 당초의 계획(예산)보다 더 많이 징수되었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기인한다. 따라서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자원배분을 민간에서 정부부문으로 순이전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이를테면 물가와 명목소득이 모두 동일비율로 상승하였다고 하자. 이 경우 실질소득은 종전에 비해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소득공제와 세율구간이 종전과 동일하면 한계 면세자 가운데 일부가 과세자로 전환된다. 또한 과세자들 중에서도 더 높은 한계세율을 적용받게 되는 과세자들이 늘어난다. 이 경우 법적으로는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증세를 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낳는다. 바로 이런 것을 들어 경제학에서는 물가세라고 한다.
근로소득공제, 기본공제, 추가공제, 특별공제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소득공제는 지난 12년 동안 공제수준이 대폭 확대되었다. 따라서 소득공제 측면에서는 물가세 효과로 인한 초과부담 문제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율구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과세자들에게 적용되는 한계세율을 상승시켜 물가세 효과를 나타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종합소득세율 수준이 10∼40%에서 8∼35%로 인하되어 물가세 효과를 완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동안 1인당 명목국민소득이 77% 상승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정도의 조정만으로 물가세 효과를 불식시켰다고 보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근본적으로 소득세의 물가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득공제 수준 및 세율구간을 물가에 연동시켜 세부담을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금번 세제개편안에서는 그런 내용이 빠져 있다. 소득세 개편을 검토함에 있어서는 수평적·수직적 세부담의 형평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차제에 시계열적 형평성까지도 함께 해소할 수 있도록 물가연동제 도입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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