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장,빽 한번써봐!' 연재 마친 박찬훈 前삼성세무서장 <인터뷰>
작년 10월 한국세정신문 창간 41주년을 기념해 처음으로 연재되기 시작한 '박 계장, 빽 한번 써봐'가 83회(9월6일자)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의 살아있는 필체로 그려진 '국세공무원·33년·애환'은 실로 근대 세정사 파란만장의 세대를 여과없이 뽑아 낸 '서사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박 계장,빽 한번 써봐'는 전·현직 국세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에게도 생생한 60·70·80년대 국세공무원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세정 현장을 전하며, 가끔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 나오게 만들기도 하며 독자와 함께 호흡한 '가슴 때리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박 계장, 빽 한번 써봐'의 주인공인 '박 계장'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삶과 비교하거나 그때를 회상하며 그리워했고 '박 계장'이 아파하면 가슴이 뭉클해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박 계장'이 화를 내면 머리끝까지 같이 화가나 차마 입 밖으로 욕은 내뱉지는 못하고 가슴속으로 삭이기도 했다.
또 '박 계장'의 거침없는 언변으로 인해 속이 시원해지는 대리만족(代理滿足)을 느끼기도 하고 '박 계장'의 어이없는 '시련'에는 자신이 '박계장'이나 된 것처럼 씁쓸해 하기도 했다.
"글자 한자 빠뜨리지 않고 다 읽었다"는 '박 계장,빽 한번 써봐'의 한 애독자는 "적어도 이 연재글을 읽을 때에는 하루가 절로 행복했다"고 했고, 또다른 독자는 "우리 같은 초년병에게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소중한 것을 일깨워줬다"면서 "주위 동료들과는 다음호에 전개될 내용을 놓고 내기를 거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실명(實名)을 거론치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삶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 있어 삶의 오아시스 역할을 해줬다고까지 평가 받았던 '박 계장,빽 한번 써봐'.
'박계장'이 걸어 왔던 세정현장에는 여전히 후배들의 뜨거운 가슴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들이 돌아볼 먼 훗날의 '박 계장'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장기간의 연재를 마친 뒤 그의 소감을 들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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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년간의 연재를 마친 박찬훈 세무사는 "도저히 공개할 수 없는 일들이 조금 남아 좀 아쉽다"고 소회를 피력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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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공직자 출신이 현직에 있을 때의 일을 신문에 연재한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재를 결심하게 된 계기라도 있습니까.
"현직때의 일을 그만둔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보통 이상의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재를 하게 된 첫번째 계기는 한국세정신문 편집주간으로 계시는 서채규님의 채근과 성화때문이었습니다. 저와 그분과는 오래전부터 서로 마음이 맞아 친하게 지내왔습니다. 국세청을 나온 2000년 초부터 줄곧 연재 이야기를 하시더니 2006년도 봄에는 세정신문 창간 41주년 기획연재물로 확정을 해버리셨습니다. 정말로 처음에는 마지못해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저의 변변치 못한 글을 장기간 연재를 해주신 한국세정신문사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번째 계기는 저를 아껴주시던 많은 분들에게 제가 그만두고 나서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못해 구구한 臆測들이 많았습니다. 조금이라도 해명을 해드리는 것이 道里가 아닌가 하는 판단에서 연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셋째는 이제 저도 回甲을 지난 나이인데 제가 平生토록 몸 바쳐 일해온 국세청 생활에 대한 재조명과 제 인생을 정리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삶의 貸借對照表와 損益計算書를 작성해본다는 심정입니다."
-연재 중에 어려웠던 일이 있었을 줄 압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바로 저의 私生活을 까 들춰내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비교적 眞率하다는 평가를 들으며 살아왔다고 自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만둔 이유를 '사표를 내어서 수리했기 때문'이라고 쓸 수는 없잖습니까? 제가 지내온 公私生活, 겪은 인생의 시련까지도 다 말씀을 드리는 것이 道理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 다음은 어떤 事件에서 관련인들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분이 입게 될 마음의 상처나 프라이버시를 무시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지나온 모든 事例를 모두 쓰기란 限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재를 시작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저에게 무슨 커다란 人生哲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세청에서 뭣하나 기억될만한 業績하나 없으면서 주제넘게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려니 그게 참 어렵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그냥 저의 反省文으로 봐주시도록 부탁드렸던 겁니다."
"시작하자 가시방석 느낌
독자 격려 메시지 보람"
-연재 중 본지에 많은 독자들이 격려를 보내왔고, 특히 박 세무사님의 글솜씨가 프로급이라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젊었을 때 작가를 꿈꾼 적은 없으셨는지요.
"이 글을 연재하면서 느낀 점은 新聞의 위력은 참으로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혹은 직접 만나서, 혹은 편지로, 혹은 전화로, 혹은 인터넷 댓글로 批判도 해주셨고 激勵도 해주셨습니다. 정말로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글 솜씨요? 그런 재주 전혀 없습니다. 아마추어일 뿐입니다.
제 性格이 원래 무던하거나 진득하지 않고 동서남북으로 번쩍 하는 성격이라서 雜技에는 좀 能합니다. 독서도 좀 하는가 하면 바둑도 장기도 고스톱도 조금은 칠줄 압니다. 카지노에서 블랙잭도 하는가하면 그림을 그리다가 詩도 써보고 글도 써봅니다. 登山도 하고 낚시도 하는가 하면 골프도 칩니다. 그런데 뭣 한가지 잘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이번 連載도 글솜씨가 뛰어나서 쓴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겪은 그대로를 事實대로 眞實을 쓰기 때문에 달리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잘 봐주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다."
-많은 현직 세무공무원들이 이 글을 읽고 "아- 그런 때도 있었구나" 또는 "지금 우리는 행복하다","배부른 소리 하지 말자" 등등 뜻밖의 교육효과도 컸다고 합니다. 그런 걸 의식하고 썼나요?
"예 그걸 傳達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特徵은 너나할 것 없이 무엇이든 '빨리빨리'하는 것입니다. 出世도 빨리 하려 하고, 돈도 빨리 벌려 하고, 먹는 것도, 화장실에도 누구보다 빨리 가고 싶어 합니다. 다만 한가지 죽음은 누구보다 제일 늦게 맞이하려 합니다.
빨리 한 출세는 빨리 말세가 되고, 빨리 번 돈은 빨리 망하고, 빨리 먹으면 빨리 체한다는 敎訓을 전달하려고 무지하게 애를 썼습니다. 옆의 누구를 짓밟아 내동댕이치고 나 혼자 높이 올라가 잘살면 뭣합니까? 같이 잘살아야지요. 최소한도 여러 사람을 열받게는 하지 말아야지요. 그런걸 알려드리려 노력했습니다. 결국 眞實이 最善의 對策임을 말입니다."
"국세공무원은 복받은 자리
자부심 갖고 위상 제고 주력해야"
-일부에서는 현재의 부인 시아씨와의 해후 등 부분적으로 개인적인 일을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과 인간적인 진솔함이 넘쳐 한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잘 알고 있는 친구, 친지, 친척 분들 모두가 저의 私生活까지 공개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습니다. 저도 많이 주저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장을 그만둔 제일 큰 原因이 거기 있는데 그걸 빠트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떳떳합니다. 한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썼습니다. 인간적으로 眞率하면 그것으로 足합니다. 그렇고 보니 제 人生이 한편의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 이 글을 정리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또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연재가 나가고부터 하루 하루가 가시방석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國稅廳에 행여 누가 되지 않을까? 후배님들이나 선배님들에게 행여 피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조바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單元의 막을 내리려 하는 시점에서 돌이켜 보니 보람과 아쉬움이 큽니다.
가장 큰 보람은 제가 眞率한 녀석이구나 하는 여러분의 評價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배님들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에 가보면 박수로 격려해주셨고 '빽 한번 써봐!'를 잘 읽었다고 오히려 感謝해 하시는걸 보고 연재의 보람을 實感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活字化된다는 制約과 연재로 인해 관련되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해서 또 도저히 公開할 수 없는 일들이 조금은 남아 있어 좀 아쉽기는 합니다."
-박 세무사님을 가리켜 '벼슬도 버리고 주유천하'를 한 '낭만파'로 회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맞습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 '벼슬 버리고 주유하는 낭만파'라고요? 아닙니다. 벼슬 잃고 제 自身을 찾는데 열심인 실속파입니다. 옛적에 같이 근무하던 現職에 높이 올라가 있는 동료들을 보면 나는 부러움보다는 대견하고 오히려 고맙기까지 합니다. 代理滿足이라 할까요? 내가 못다한 限을 풀어주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재에서도 썼습니다만, 健康이 있을 때에 가급적이면 현직때의 못 다한 것을 모두 해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稅務士일도 착실히 하려 합니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선배의 입장에서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의 연재 끝부분에 '꼭 드리고 싶은 말'에 모두 적어놓았습니다. 정말이지 국세공무원들은 福받은 자리입니다. 요즘 公權力의 權威가 아무리 떨어진다 해도 租稅權力의 권위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국세청 位相을 제대로 지켜나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거길 나오셔도 또 할일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自矜心을 갖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마시고 열심히 勤務하시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