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대리인이 수입금액을 누락하고 비용을 과다 계상했다는 이유로 그 세무대리인을 징계한 것은 위법이라는 최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은 현행 세무사징계양정규정과 그 운용의 난맥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세무대리인이 자신의 수입금액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세무대리직무 수행을 제약하는 징계를 내린 것은, 고유직무와 세무신고의 성·불성실을 혼돈한 판단이라는 견해가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일이다. 그러나 주무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사법판단에 의해 그 '모순'이 증명된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떠오르는 것은 세무대리업무라는 고유직무행위에 가해지는 현행 '세무사징계양정규정'의 비현실성이다. 수임업체 세무회계에 대해 거의 무한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 현행 세무사처벌규정은 너무 포괄적이다. 아무리 '실수'로 수임업체의 세무신고를 잘못했다 하더라도 직무정지 등 징계를 받게 돼 있는데, 이는 세무대리인으로서의 생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세무대리업무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세무대리인은 관련업무의 높은 도덕성과 정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강도있는 불법배제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왜 세무사들이 그동안 이런 징계를 받으면서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고 말할 정도로 편협한 규정이 지금까지 존속돼 왔다는 사실은, 이 사안이 안고 있는 본질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바로 징계권을 쥐고 있는 감독기관의 무딘 감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가혹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밀도 있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당사자들의 소심한 대처도 지적받을 일이다.
세무대리인들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커질 것이고, 그 협조를 얼마나 잘 받느냐가 조세정책의 성패와도 직결된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 돼 있다.
세무대리징계양정규정을 고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감독기관이 먼저 유연해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