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7.05. (토)

"박 계장, 빽 한번 써봐" (59)

창간 41주년 기념 기획연재 박찬훈(朴贊勳) 전 삼성세무서장

 

 

64.  배 기사님  고맙씸더 !

 

아직까지 구미세무서에서 기사님으로 근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구미생활 1년 동안 배 기사님과 같이 근무하게 된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부지런하면서도 성실하고 모든 일을 알아서 챙기면서도 입은 무거워 말이 없다.

 

아침에 출근을 하고 나면 서장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별일이 없으면 다시 관사로 간다.

 

대충 정리해 놓은 이부자리를 다시 정돈하고, 깨끗하게 방청소를 한다. 세탁기를 돌려 빨래하고 와이셔츠를 다려 옷장에 걸어놓고 내의를 가지런히 포개어 옷장 서랍에 정리해 놓는다.

 

다시 세무서로 와서는 각 과장·계장님들의 차량을 점검하고 세차하고….

 

추운 겨울, 서울집에 갔다 일요일 밤늦게 구미역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배 기사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관사에 들어가면 춥고 썰렁하리란 예상과는 달리 뜨끈뜨끈 후끈후끈하다. 기사님이 내가 도착하기 서너시간 전에 관사에 미리 와서 보일러를 틀고 이부자리를 깔아놓았다.

 

집사람은 내가 구미에서 생활한 1년동안 내 생일날 딱 한번 내려온 것이 고작이었다. 무관심하다고 할까?

 

자기의 역할을 모르는 것 같아 좀 답답하다.

 

배 기사님도 그런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마누라를 대신해 객지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정말 꼼꼼하게도 챙겨줬다.

 

"서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부속실이든 어디든지 제가 근무할 수 있도록 책상을 하나 마련해 주십시오."

 

배 기사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느 기사 같으면 숙직실 방에서 TV를 틀어 놓고 낮잠 자다 신문 가져다 놓고 뒤 적거리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는 부속실 김양 옆에 만들어 놓은 책상에 단정하게 앉아 세법을 읽거나 독서를 한다.

 

과장 다섯 중에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 Y, K, H 세사람이나 됐다.

 

그들도 객지생활에서 오는 허전함과 불편함을 똑같이 격고 있으리라. 우리는 매주 금요일 일과후에는 관사에 모여 객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단합대회를 갖도록 했다.

 

금요일이 되면 배 기사는 미리 관사로 가서 거실탁자에 담요를 깔고 안방 TV밑의 서랍속에 항상 비치돼 있는 화투를 올려 놓고 잔돈을 갈라놓는다.

 

마지막으로 방석을 깔아놓고 보일러를 올려놓으면 완벽한 고스톱 준비 끝이다.

 

과장들도 금요일만 되면 습관적으로 관사로 집합했다.

 

거기서 저녁시켜 먹고, 소주 한잔하고, go-stop치다가 밤 열시쯤 해산하는 순서로 우리의 단합모임이 진행된다.

 

거기서는 K재산과장만 조심하면 된다.

 

그는 '타짜'다.

 

내 용돈 다 따갔다. 그에게 잘못 걸리면 거덜난다.

 

그만 일찍 집으로 가보라 해도 배 기사님은 끄떡도 안한다.

 

저녁을 주문하고 설거지하고 모임이 끝나면 깨끗이 청소를 해놓고 나서 집으로 갔다.

 

이층 서장실로 올라가는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도 그냥 힐끔거릴 뿐 총무과장과 함께 올라가고 있는데도 인사하는 직원 하나 없다.

 

직원인사가 곧 있어서 그런가?

 

국세청 기사님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배 기사만한 직원을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하였다.

 

구미에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히 챙겨준 배 기사님에게 이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

 

"배 기사님 고맙씸더!"

 

65.  충청도로 함 가 보실래유?

 

구미에서 1년은 참으로 보람된 기간이었다.

 

나는 거기서 여러가지를 경험했다. 일도 엄청 해봤고,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민원실을 정비했으며, 세무서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았다고 자부한다.

 

지금도 구미에 가면 나를 반가이 맞아주는 분이 많다.

 

그렇게 정든 세무서를 떠나 대전청 산하 천안세무서로 가라는 발령을 받았다.  정확히 '94년8월3일 날에.

 

우선 대전청에 들려서 본청에서 총무과장님으로 모셨던 '이정옥' 청장님에게 인사를 드리니 반가이 맞아주신다.

 

지방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천안 총무과장님과 함께 천안으로 출발했다.

 

세무서는 복잡한 큰길을 이리저리 돌아 일방통행 골목길을 들어가다 주택가 중심지에 있었다.

 

앞마당도 청사건물도 넓디 넓은 구미세무서에 비하면 너무 작고 답답했다.

 

앞마당의 작은 정원에는 말라죽어 앙상한 가지만 남은 큰 나무가 방치돼 있고 주차장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차들로 꽉 차있다.

 

현관 입구에 비치해 놓은 안내 책상에는 근무자는 어딜 가고 빈 의자만 남았는데 그 위에 신문뭉치만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이층 서장실로 올라가는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도 그냥 힐끔거릴 뿐 총무과장과 함께 올라가고 있는데도 인사하는 직원 하나 없다.

 

직원인사가 곧 있어서 그런가?

 

서장이 부임하는데도 이렇게 한심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이곳 천안세무서. 첫 인상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여기는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이 있을 것 같다.

 

퇴근을 해 관사에 와보니 직원숙소와 나란히 붙어 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다.

 

앞마당에는 무성한 잡초를 그대로 방치해 모기들의 소굴이 돼 있었고 마시고 버린 빈 소주병, 맥주병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나는 관사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옆에 붙어있는 직원숙소에 들어가 보았다. 방을 열어보니 이건 마치 난민촌이나 빈민촌의 거지소굴 같았다. 기가 막힌다.

 

때묻은 이부자리는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고, 겨우 사람 몸 하나 들어갈 만한 공간만 남긴 채 잡동사니 물건이 흩어져 쌓여 있었다.

 

무슨 냄샌지 도저히 들어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른 방도 모두 다 그랬다.
 <계속>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