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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조는 적장(敵將)인 손권(孫權)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혜없음을 비웃었다. 그럴 때마다 매복(埋伏=숨어 있음)했던 적병의 기습(奇襲)을 받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한다.
이것이 유명한 중국 삼국지(三國誌)에 나오는 조조삼소(曹操三笑)이다.
후세(後世) 사람들은 그 우광(愚狂=어리석고 미침)함을 비웃었다. 자신의 지략(智略)만을 과신(過信)하고 남의 능력과 지혜를 무시하려 드는 그 경박(輕薄)함을 꾸짖었다.
그러나 조조의 생명(生命)은 관우(關羽=중국 蜀漢의 名將)의 온정(溫情)과 의리(義理)에 의해 부지(扶支=배겨남)될 수 있었다.
만약 조조가 또 한번 웃을 수가 있었다면 그는 관우의 신의(信義)까지도 비웃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난세(亂世)의 만용(蠻勇)의 패자(=함부로 날뛰는 권력자)는 신의(信義)와 백성에 대한 온정(溫情)도 그 모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적 수단(政略的 手段)에 불과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조조사소(曹操四笑)까지를 서슴지 않는 몰염치(沒廉恥)한 철면피(鐵面皮)가 더러 있다고 들린다.
돌이킬 수 없는 Miss(실수)를 저지르고도 자책(自責)할 줄 모르고 동도서말(東塗西抹=동쪽은 바르고 서쪽은 지우고 이랬다 저랬다 함) 한쪽만을 임기봉합(臨機縫合)하는 교사술수(巧詐手術=속임수술) 행위, 그들은 실속없는 정의(正義)를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障碍物)로만 여기고 오직 결과(結果)만을 신봉(信奉)하는 것이다.
그러한 천하의 흉웅(兇雄=흉악한 영웅) 조조의 말로(末路)는 과연 어찌됐을까?
그를 정시착란자(精神錯亂者=급성 중독자)로 진단(診斷)한 당대의 명의(名醫) 화타(華陀)의 뇌수술(腦手術) 권고를 거지(拒止=못하게 함)했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하고 그 창업(創業=나라를 처음으로 세움)을 사마(司馬)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래서 조조는 '네번째 웃음'을 잃었다.
그는 단말마(斷末魔=숨이 끊어짐) 임종의 자리에서 그에게 올바른 말로 간(諫=충고)하던, 그래서 죽은 옛 충신(忠臣)들을 호명(呼名=이름을 부름)하면서 얼마 안 남은 부하(部下)들 앞에서 뼈만 남은 야윈 손으로 땅을 치며 대성통곡(大聲痛哭)했다고 한다.
온 천하는 물론,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진 간웅(奸雄) 조조(曹操)도 궁지(窮地)에 몰려서는 충직(忠直)했던 가신(家臣)을 그리워했다. 즉 과욕(過慾)의 프레셔(重壓感)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으로 환생(還生=되살아 남)을 한 것이다.
눈보라 속에 피어 홀로 고절(孤節)을 지키는 '매화'의 청아(淸雅=맑고 산뜻함)한 모습. 남녘땅 새 풀이 돋는 시냇가에는 '버들강아지'가 귀여운 얼굴을 내밀고 포근한 봄의 영채(映彩=환한 고운 빛깔)를 펼치는 이 땅에서 앞으로는 상자공상(相刺公傷=서로 쑤시고 같이 상처받음)의 정치싸움은 집 밖으로 몰아내고 다시는 못 들어오게 문(門) 빗장 굳게 닫아걸고, 국민 모두가 안도(安堵=있는 곳에서 편안히 삶)하고 따뜻한 항심(恒心=떳떳한 마음)으로 웃고 사는 새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단(但) 조조(曹操)의 삼소(三笑)가 아닌 국가와 직장과 가족을 생각하며 무릎을 치고 이악파안대소(弛顎破顔大笑=턱을 늦추고, 얼굴을 깨고 크게 웃음)하는 기쁜 웃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