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메마를 것만 같은 세무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국세공무원.
하지만 1만7천여명의 대식구 중에 내로라 하는 '국세청의 詩仙'으로 불리우는 세사람이 있다. 박정원(이천세무서) 이영식(의정부세무서) 황상순(서울청) 씨가 바로 국세청 시선 3인.
바쁜 업무를 하면서도 늘 시상을 품고 살아가는 가슴이 따뜻한 세무공무원들이다. 단순 취미삼아 끄적대고 감상적으로 만들어 내는 시들이 아니라 곰삭은 젓갈 맛처럼, 때론 미어지듯 터질듯한 심장 한켠의 고통을 토해내듯 시 한줄 한줄 써 내려가는 이들이다.
조병화·정호승 시인 등 프로 싯꾼(?)으로부터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의 사사와 습작을 했을 정도로 시에 대한 정념을 품은 프로 시인들이다. <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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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우수상으로 등단
시집 : 꽃은 피다, 내 마음속에 한 사람이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한국시문학회, 현대시인협회, 강남시문학회 회원
물박달나무
(박정원, 이천세무서)
생전의 그 분인 줄 알았다
해진 옷을 기워입고
평생 한 자리만을 꼿꼿이 지키셨던
산부처
그 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더 깁울데 없는 누더기로 남을까
깊은 산중
밥짓는 연기를 올리는 너와집처럼
넉넉해져야한다면
새옷 한 벌
따로 장만해드리지 말고
상처투성인 채
마냥
서 있어야 되리
詩作노트
1년여 넘게 물박달나무와 함께 했다
이만큼 얼굴을 내미는 것도 모두 물박달나무 덕이다
눈곱만큼도 속 뜰을 드러내지 않는 나무 사람들은 나무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나무는 결코 사람이 되고 싶지 아니했다
끝이 없는 승산인 줄은 알지만 혹시 아는가, 정말 나무가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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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출생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시집:공갈빵이 먹고 싶다
파랑주의보
(이영식, 의정부세무서)
큰 너울이었다
바람과 비,
파도가 한 패거리가 되어
포구의 멱살을 잡고 나뒹군다
방파제 뒤 먼발치에서 구경하던
작은 목선들까지 싸움판에 끼어 들어
부딪고 깨지고 난장판이다
질척질척
어물전 골목 돌아온 빗줄기는
싱싱 횟집 귓불을 적신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익명으로 남겼던 흔적
진창의 발자국들이 젖고
지워진다, 젖고 지워지는 일이
전부인듯
우리는 양철지붕 빗소리에 갇혀
막소주와 제첩국 한 그릇으로 목을 씻는다
더 지울 것도 없이 맑게 닦인
손톱만한 조갯살들
내 불안과 의심의 막사발 가장자리로 쓸린다
파랑 따라 거칠게 당겼다 놓는 바다의 음계
조율되지 못한 내 빈 속을 울컥
하수구에 쏟아놓는다.
詩作노트
파도를 보면 각자 전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딪고 깨지고 다시 힘을 모아 파도는 일어난다.
파도 없는 잔잔한 생이 꼭 행복이랄 수 있으랴!
시는 편편이 각개전투다. 늘 백지에서 출발하는 전투여,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가서 패대기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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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시인문학 등단
2000년 '어름치사랑', 2002년 '사과벌레의 여행'(문예진흥기금 수혜) 시집 발간
과수원이 있는 마을풍경
(황상순, 서울청 감사관실)
지구가 둥근 것은
세상 둥글게 살라는 것이다
잠깐 돌아서면 잊는 사람들을 위해
낮에는 해를, 밤엔 보름달을
하늘에 둥실 띄워 놓은 것이다
그래도 자꾸 깜박거리는 이들 때문에
둥글게 박을 빚어 지붕 가득 올려놓았다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살라고
사람의 마을 푸른 언덕배기엔
사과며 배며 복숭아며 포도며
세상의 둥근 것들을 다 모아서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것이다
과수원집 노부부가 맡아 기르는 손주놈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연필로 크레용으로 벽마다 온통 그려놓은 동그라미
호박넝쿨이 목을 빼어 밤낮으로 그걸 구경하다가
그만 둥그러니 작은 지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詩作노트
지구가 만약 네모면 어떠할까. 보름달이 만약 삼각형이라면. 사과가 삐죽삐죽하게 생겼다면, 사람들의 마음들도 행여 날카롭게 모서리 지고 삐죽삐죽 튀어나오진 않았을까.
둥근 것끼리는 서로 부딪쳐도 상처가 나지 않는다. 서로 상처내며 살지 말라고 神과 해와 달을 둥글게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소한 것까지 깊은 뜻을 담아 이렇게 세세히 챙겨주시는 참 고마우신 神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