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시라는 말에 엄마는 펄쩍 뛰신다. 돈 많이 들이고 뭐 하러 가냐고. 아들이 새로 아파트 입주를 해서 궁금하면서도 가보고 싶다 말 한번도 못하고, 다녀오시라고 해도 딸 돈 많이 쓸까봐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신다.
"안가면 어떠냐? 저희들이 1년에 한두번은 오는데. 전화도 가끔 하니 소식도 알고. 괜찮다. 난 늙어서 자꾸 돈 들어 갈 일 생길텐데 돈 쓰지 마라."
"엄마 돈으로 가세요. 그럼."
"그 돈이 그 돈이지. 그게 뭐 내 돈이냐? 나 병들면 시설에 갔다 넣을 때 써야지 안된다."
왠 시설? 딸 고생시킬까봐 틈만 나면 '나 이상한 짓하면 시설로 보내'라고 성화를 하신다. 어쩜 정말로 보낼까봐 무서워서 그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할 정도로….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은 막 화를 낸다.
"당신이 모시고 가야지, 어떻게 작은 애 보고 모시고 가라고 그래!"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딸이 없는데서 아들과 며느리가 하나된 마음으로 지내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엄마 소원이 아들하고 사는 건데 그럴 수 없으니 며칠만이라도 그래 보라구요. 또 백내장 수술도 해야 되는데 나는 그때 휴가 할거니까 그냥 아무 말 말고 보내드려요."
이제야 눈치를 챘다. 어쩜 85세나 되신 장모님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여행길을 딸인 내가 왜 떠밀듯 보내려 하는지….
"장모님! 제주도 가셔서 갈치하고 고등어 싱싱한 걸로 좀 사오셔요!"
이 한마디에 엄마는 그만 손사래를 치던 것을 거두셨다. 저녁 7시30분. 이때부터 바빠졌다.
동생한테 연락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이 성수기에 비행기표를 구하고…. 밤사이에 모든 일이 진행돼서 다음날 1시 비행기로 엄마는 그 좋아하는 아들에게로 가셨다. 딸 마음은 조금도 눈치 못채고 발걸음도 가볍게…. 얼마나 들떴는지 집에 남은 세마리 강아지 다 쪄죽으라고 문이란 문은 꼭꼭 닫고 한낮 뜨겁게 달궈지는 집을 뒤로 하고.
딸 집에서는 늘 사위에게 미안해 하며 집안일을 하시느라 편히 앉아보지도 못하시더니 제주도에서는 몇번이나 와봤으니 구경할 곳도 없다고 하시며 아들네 돈 쓸까 걱정을 그렇게 얼버무리시고 나가지도 않고 하루종일 거실에 자리를 깔고 누워 뒹굴뒹굴 하셨단다.
전화도 자주하면 올케가 힘들어할까 싶어 조심스러워 아침, 저녁 두번만 했다.
출근 잘하고, 퇴근한다고.
오는 날 아침 제주 수산시장에 가신다고 하신다. 사위가 부탁한 대로 갈치와 고등어 사러. 매일 같이 싱싱한 갈치를 사려면 오는 날 아침에 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시면서 오로지 사위에게 맛있는 갈치를 먹이기 위해 제주도를 가신 것 같은 말투다.
"김 서방 주려고 제일 좋은 걸루 샀다. 아주 은빛이 영롱한 것이 얼마나 싱싱한지 몰라. 근데 너무 비싸구나. 이건 내 돈으로 산다. 아무 걱정 마라. 여기서 바닷물에 한번 담궈서 절여준다는구나. 그게 맛있단다."
아! 왜 이렇게 가슴속에 물이 흐를까? 그냥 철철 넘치게 주체할 수 없이 흐른다. 흑흑 느끼게 흐른다. 평생을 당신 자식 넷만 바라보고 사셨는데 왜 이렇게 되셨을까? 지금도 오직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생각뿐인데 그 아들은 왜 엄마를 한번도 쳐다봐 주지 않는 걸까?
퇴근길 골목길을 들어서는 내 발길이 바빠졌다. 조금더 가야 우리 집 난간이 보이는데 분명 엄마는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나와 계실거다.
계신다. 백내장으로 잘 안보이시면서도 딸 모습을 알아보고 손을 흔드신다. 또 가슴속으로 물이 흐른다. 철∼ 철∼. 그래도 밖으로 넘치면 안된다.
저녁 식탁. 김서방은 밥 두그릇을 비웠다. 연신 "맛있지?", "네! 아주 맛있네요. 서울에선 왜 이런 맛이 안 날까요?"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