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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2. (일)

[隨筆]빨래터의 정한(情恨)

정양섭(시인·수필가)


요사이 교통문화가 발달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도보로 걸어야만 했던 옛 시름을 잊은지 오래됐지만 나는 산간벽촌시절의 그리운 옛 정경 중에 잊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낙네들의 정한이 서리던 빨래터이다. 집앞에 흐르는 도랑이나 시냇물가, 우물이나 둠벙가에 덜퍽진 돌 몇개를 놓으면 빨래터가 됐다.

빨래터는 아낙네들의 이웃간의 정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푸념으로 송글송글 적시는 눈물로 심중에 묻힌 한을 풀던 곳이다. 빨래터는 동네 아낙네들의 사교장이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소이다. 남정네들에게 사랑방이 있었다면 아낙네들에게는 빨래터가 있었다. 사시사철 비워지지 않던 빨래터. 그 깔깔거리던 웃음소리와 스스럼없이 내뱉던 정담 및 한담의 조잘거림들, 그리고 소박하면서도 정숙하던 아름다운 맵씨들, 귀에 쟁쟁하고 눈에 삼삼하다.

아직은 손이 시린 봄 냇물에 아낙 예닐곱이 빨래를 한다. 좔좔 흐르는 냇물소리에 그네들의 말소리는 묻혀 들리지 않지만 가끔은 깔깔거리는 낭랑한 웃음소리가 내를 건너 들려온다. 그리고 땅땅, 텅텅, 뚜당탕 방망이 소리…. 박박 깍은 머리의 조무라기 서넛은 서너발짝 떨어진 곳에서 종아리 담그고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고 있는데 물에 들어오지 못하는 누렁개는 괜히 냇가를 오르내리며 꼬리질이다.

이것이 아스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어릴적 빨래터의 정경이다. 흰옷을 즐겨입던 우리의 의상생활은 여인들에게 빨래라는 중노동을 강요했다. 사시사철 온 식구의 빨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던 우리의 누나, 며느리, 어머니들은 그래서 마을을 휘감는 냇물의 너른목에 터를 잡고 한데 모여 빨래를 하며 시집살이의 고된 나날을 입방아로 풀었다. 빨래터는 그대로 여인들이 뱉어낸 한숨과 한이 서린 곳이자 그 한숨과 한을 빨아내는 카타르시스의 공간이었다.

막내둥이의 흙투성이 옷이야 웃으며 빨아낸다지만 심술궂은 시누이의 속곳이나 술주정뱅이 남편의 바지에는 방망이 찜질을 냅다 하게 마련이다. 화풀이다. 힘껏 내려치는 방망이 사이로 줄줄 빠지는 땟물처럼 여인의 한도 냇물을 타고 흘러간다.

빨래터는 동네소문의 전파방송국이었다. 빨래감을 머리에서 내려놓기가 무섭게 여인들은 엊저녁에 당한 시어미의 구박에서부터 구실 못하는 남편에 대한 넋두리까지 빨래터 여인네들 아니면 들어줄 이 없는 입방아를 찧어낸다. 그뿐인가. 새벽에 우물가에서 나누던 이야기가 속편으로 이어지고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남편들과의 은밀한 이부자리 이야기까지도 부끄럼없이 오갔다.

자연히 빨래를 담아 오는 함지박엔 온갖 소문이 묻어 왔다. 동네 처녀, 총각이 물레방앗간에서 만나더란 소문, 누구네 과부 며느리가 요즘 행동이 수상터란 소문, 누구네 아버지가 장날 읍내에서 여우같이 생긴 여자랑 만나더란 소문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곳이다.

빨래를 갔다오는 아낙들은 그래서 고된 노동의 대가를 빨래터에서만 입수할 수 있는 정보로 보상받았다.

여름날의 빨래터는 그 활력과 수다로 최고조를 이룬다. 빨래를 하다 땀이 흐르면 그대로 맑은 냇물에 풍덩 몸을 담갔다.

옷이야 벗을 수 없어 적삼을 입은 채로 담근 몸에 여인들은 손을 찔러 몸 구석구석을 씻어낸다. 달리 피서법이 없던 여인들에게 빨래터는 더없는 피서지였던 셈이다. 착 달라붙는 옷을 다시 추스른 여인들이 포진하고 있는 빨래터는 따라서 여성들의 전유공간 이었다. 빨래터를 지나는 남정네들은 공연히 오금을 못 폈다. 발이 헛디뎌지고 숨도 가빠진다.

다행히 탈없이 지나치는데 성공하면 그만이지만 어쩌다 지나갈 무렵 여인들의 까르르 깔깔 웃음이 터지면 그건 영락없이 칠칠맞은 자신을 흉보는 소리로 들려 뒤통수에 땀이 났고, 그래서 걸음을 재게 놀리다가 또 한바탕 터지는 웃음에 아예 줄행랑을 쳐야 했다.

고통받는 여인들이 한을 빨고 한숨을 물에 풀던 빨래터. 이젠 벽촌에도 세탁기가 들어앉아 그 힘든 노동을 대신해 준다지만 수정같이 맑은 물에 손을 담그며 온갖 수다에 시름을 잊던 소중한 공간은 잃어버린 세상이다.

사람들 사는 삶의 유행따라 젊은 아낙네들이 도시로 가버린 오늘 빨래터의 돌들은 시멘트길에 묻혀 버렸다. 옛 정취를 눈 씻고도 찾을 길 없나니 세월의 뒤안길에서 눈물짓는듯 내가 그리던 빨래터의 정한이 또 하나의 을씨년스러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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