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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3. (월)

[隨筆]별빛을 가슴을 담아-(下)

-이 욱(공주署)


이녀석은 가방을 둘러멘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나간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내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못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나는 그런 아내를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면서 등을 토닥여 줬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떠나는 장정들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간 찾을 수가 없다. 모두들 까치발을 하고 목을 뺀다. 장정들은 조교들의 구령에 어깨동무를 하고 줄을 맞춰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우로 좌로 방향을 틀더니 배웅하는 사람들에게 "필승"이라고 하고, 거수경례로 마지막 인사를 고한다.

그리고 저 건너 교육장으로 이동하여 분류작업에 들어갔는지 몇줄로 나누기를 반복하면서 헤쳐 모임을 하고 있다.

나는 한개피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고, 순간 만감이 교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교육장에 시선이 얼어붙은듯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자 떠나자, 재회를 기다리며 석별을 하자.

돌아오는 동안에도 눈물을 흘리는 아내, 엄마의 마음은 다 저런 것일까? 나는 그런 아내에게 몇마디를 던졌다.

나는 아내에게 "혼자서 버스를 타고 조치원 32사에 입영을 했고, 용산을 거쳐 103보(춘천), 소양강을 따라 양구, 그리고 최전방인 21사단 소속으로 있는 동안 철책경계근무까지 아무 탈없이 군대생활을 마쳤다"고 말해줬다. 심지어는 6시간, 12시간, 24시간의 근무유형도 무사히 견뎌냈다고 덧붙였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을 시켜줬다.

꼭 8일만에 입고 갔던 옷가지 등이 소포로 보내져 왔나 보다. 울먹이며 아들을 껍데기를 벗겨보냈다고 알려 주는 아내. 그래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라. 감정까지 숨길 수 있겠나. 나는 편지도 왔냐고 궁금해서 물었으며, 그 내용이 듣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약속을 뒤로 미루고 집으로 일찍 향했다. 자석처럼 옷가지속에 끼워 보낸 편지를 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잘 있다니 다행이다. 낯선 생활에 어찌 힘이 들지 않겠니. 하고 싶은 말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나는 공주에게 "오빠한테 편지를 써야하지 않겠니"하며 의향을 떠보았다. 우리 공주는 기다렸다는듯 두장의 편지지에 오빠에 대한 생각을 가득 채웠다.

아, 이럴 수가. 우리 공주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가족의 근황이며 애완견 재랑이 이야기 등 평소에 다정했던 아이들이었기에 할말도 많았나 보다. 재랑은 처음에 우리 공주의 이름으로 지어주려 했던 사연이 있었다. 나와 아내는 어린아이가 이렇게도 글을 잘 쓸 수가 있을까 생각하며 놀라고 말았다. 깔끔하게 쓰여진 필체도 제 오빠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나도 이 녀석에게 편지를 썼다.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거라. 너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한가지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떳떳한 자부심을 갖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은 항상 너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런 너를 향해 힘찬 박수를 보내고 있음을 기억하거라. 또한 외로워하지 말거라. 한포기 풀에도, 한그루 나무에도, 한줄기 바람에도, 짐승의 소리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돌에도, 흐르는 물에도 뜻이 있음을 잊지말거라. 자연의 이치는 인생과 다르지 않단다. 혜안을 갖고 어울려 친구가 되거라. 상관과 동료와도 신뢰를 쌓고 믿음을 주거라. 가족이 몹시 그리울 때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거라. 별빛이 따스할 것이다. 우리도 그 별들을 보고 있을 테니까. 건강하거라, 만날 때까지 건투를 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내는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다. 선뜻 한장의 편지를 마감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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