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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3. (월)

기타

[문예마당/書信]딸에게 보내는 가을편지

강효숙(강동署)


가람아,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이 깊어가고 있구나!
일요일날 비도 많이 오는데 우산 들고 시험보러 나가는 너를 두고 마음도 가라앉힐 겸 편지 한통 쓰고 싶어 이렇게 앉았단다.
날마다 썰렁시리즈로 짧은 멜을 주고 받는데 익숙해진 우리라 오랜만에 쓰는 편지에 무엇부터 써야 할지 새삼 어색하기도 하구나.
지금 나는 우리의 가곡을 들으면서 편지를 쓰고 있단다.
우리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속으로 스며든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우리 것을 많이 사랑하는 듯 싶어.

가곡을 듣기도 너에게 편지를 쓰는 만큼이나 오랜 기억이구나.
우리 가곡은 학창시절에, 초년병 사회인으로 있을 때 참으로 많이 들으면서 부르기도 한 노래였는데….
의미도 없이 '가고파'의 고향을 다녀오기도 했고 실망을 했으면서도 그냥 지나치지를 못해 너와 함께 다시 찾아가 보기도 했던, 그러면서 우리의 좋은 노래가 너무나 많이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 심각해 하기도 했지
그러나 이 생각은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러다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음반을 낼 때마다 새로운 음반에 꼭 우리의 가곡을 한두곡씩 넣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역시 세계속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했지. 그러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고….
우리 한때 많이 흉내내고 그랬잖아.
'94년이었던가? 처음 예술의 전당에서 있은 그녀의 우리 가곡 연주회 팔을 유난히 크게 흔들면서, 넓은 무대 위를 활보하며 화려한 드레스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한곡 한곡 부르던 우리의 노래….

후에 '새야 새야'라는 음반으로, 우린 수시로 들었었지.
냉장고 옆에 커다랗게 붙은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걸음걸이에서 부터 노래 부르는 모습까지 흉내내면서 말야. 그 중에서도 아빠의 흉내는 가히 수준급 코미디였지.
나는 좋아하는 가곡들이 너무나 많아 하나만 꼭 찍기에는 주체할 수 없는 망설임이 있지.
가고파
수선화
기다림
오라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고향의 노래
아무도 모르라고
산길
토함산
사랑
보리밭
내 맘의 강물
남촌
그리운 금강산

이왕 우리 것이 나왔으니 오늘은 그냥 끝까지 우리 것에 대한 사랑으로 얘기할께.
가람이는 지금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잖아.
글로벌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선생님이 꿈이기도 했던 엄마가 빗나간 진로로 이루지 못한 꿈을 나름대로 그녀의 후세에게 시켜보고자 하는 대리만족 심리도 없진 않을 듯 싶어.
그러나 시대는 순식간에 너무나 많이 변해버렸어.
토종 영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몇십배의 노력이 필요하니 짧은 시간 속에서 우리의 좋은 글, 좋은 노래는 언제 그 깊은 맛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그냥 혼자만의 욕심이 있다면 가람이가 영어공부를 기반으로 세계 몇개 언어를 터득하여 우리의 좋은 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되어 주었으면 싶어.
가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즐겨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엄마의 욕심으로 특정인만이 아닌 대중화된 우리의 글을 너를 통해서 세계에 내놓고 싶구나.

추석이 며칠 남지 않은 일요일, 밖에는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리는데, IET시험(International English Test) 국제영어학력경시대회) 종료시간이 1시간이상 남았구나.
아니 정확하게 지금쯤 시험이 시작되었겠구나.
테니스 US오픈에서 너의 팬이자 애인인 카를로스 페레로도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 오고 있으니 너도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그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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