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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6.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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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寸鐵活仁]悲觀은 못난이의 持病

-멀리 보고 밝게 살자


옛날 선비는 과거를 보기 위해서 책을 읽고, 농부는 수확의 가을을 기다리며 밭에 씨를 뿌린다. 그래서 과거에 들어 벼슬을 하고 곡식 많이 거둬서 잘 살면 되겠지만 노상 그렇지 못한 것이 人生事다.

그럴 때마다 좌절을 하고 앞날을 비관해서 일손을 놓았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고 우리의 지금도 없다.

失望과 試鍊을 딛고 일어서신 조상님의 蔭德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고통을 이기고 고생을 해서 얻어낸 功果는 그만큼 값지고 오래 가는 것이다.

산에 땔 나무를 하러간 사람이 돌아올 때 편하기를 바라면 그 나무짐은 작아지지만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을 생각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편히 잠드신 부모님과 아이들을 떠올리면 나무하는 손놀림은 빨라지고 신이 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주 일어나는 젊은이들의 自殺사건…. 그 이유가 주로 극심한 취업난과 카드빚 때문이라고 하는데 최근에 심한 産褥熱(?)을 앓고 있는 政治에 대한 절망감도 그에 일조를 하는 것도 같다.

사람이 '죽을 각오'를 하면 하다못해 길바닥에 버려진 폐지를 주어 팔아서 먹고 사는 길도 있을 것이고, 擬製 强盜(강도 시늉)를 해서 교도소로 가려는 별난 재주꾼(?)도 있는 판인데 아까운 젊은 生命을 헌신짝처럼 쉽게 버리는 그 헐값 心志가 가엾고 밉살스럽기까지 하다.

사람이 자기가 사는 세상에 불만을 갖고 올곧은 批判을 하는 것은 社會淨化를 위해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不平이나 誹謗이 아닌 改善을 위한 提言이고 是正을 위한 善意의 忠告라야 한다.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의 視角이나 見解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잔이 차지 않는 술잔을 놓고 "잔이 半이나 비었다"고 언짢아하기 보다는 "아직도 半이나 남았네"하는 肯定的인 생각은 사람에게 희망과 힘을 주지만 체념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면 永久不治病者인 페시미트(厭世家)가 되고 만다.

세끼 밥상을 앞에 놓고 미리 '식중독'을 염려해서 밥맛을 잃는 사람, 남의 好意와 忠告를 곧바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미끼를 꺼리는 물고기가 돼 괜히 걱정으로 日常을 우울하게 지내는 못난 사람. 그 대개가 含量未達의 成功人에게 그런 사람이 많은데 그런 사람 주위에는 역시 含量 太不足의 小人들이 모여 든다.

群衆속에서 오히려 孤獨을 느끼는 그들에게 있어 좋은 이웃과 忠告는 성가신 歌呼中의 징소리요, 귀찮은 鬼面의 微笑이다.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에는 눈도 주지 않고 모래성을 쌓아 올리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 그와 같이 모든 것을 긍정하고 自足하면서 사소한 것에도 感動할 줄 알고, 욕심을 줄이고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게 이 세상에 寄與하면서 살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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